선진국 세제 정책, 증세→감세로…韓 증시도 '성장 카드' 써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尹정부 추진 나서
증시 활성화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세수 증대 기여도 전망
경제학이 추구하는 두 가지 대원칙이 있다. 하나는 ‘효율성’(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공정성’(분배)이다. 두 원칙이 선순환 관계일 때는 희소한 자원 배분을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최선책이지만 악순환 관계일 때는 정부가 개입해 두 원칙 간의 최적점(일명 코스의 정리)을 찾아야 한다.
연초부터 두 원칙이 새삼 화제가 되는 것은 10년 전 거셌던 토마 피케티와 앵거스 디턴 간의 논쟁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로 잘 알려진 피케티는 성장할수록 분배가 악화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위대한 탈출>의 저자인 디턴은 피케티와 완전 대척점에 선 것은 아니지만 성장과 분배가 같이 갈 수 있는 문제라고 봤다.
두 학자 간의 논쟁이 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것은 금융이 실물을 주도하고 디지털화가 진전되며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성장과 관계없이 소득 불균형이 ‘K자형’이란 신조어를 낳을 만큼 악화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 해인 2019년까지 그랬다.
힘이 실린 피케티의 주장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와 ‘1인 1표’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체제 간 불일치까지 겹치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낳았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에는 로봇세, 초부유세 도입 등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는 각종 지원의 참고 잣대가 됐다. 심지어는 횡재세 도입과 ‘빚내서 더 쓰자’는 현대통화론자까지 나왔다.
하지만 올해 미국경제학회를 앞두고 디턴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는 통계가 나왔다. 미국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직전이던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의 계층별 소득 증가율을 보면 하위 10%는 9% 증가했지만 상위 10%는 4.9%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지니 계수가 2022년 0.396에 그쳤다. 2016년 이후 처음으로 0.4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니 계수가 하락한다는 것은 소득 불균형이 개선된다는 의미다. 다른 국가들도 소득 불균형이 개선되고 있다는 통계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경우 세전소득을 기준으로 해 소득 불균형 개선이 정책당국과 정치권의 노력 때문이라는 반박을 사전에 차단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저소득층(혹은 블루칼라)의 역습 시대가 온다’고 예상할 만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나타난 근본적인 변화가 무엇일까. 미국경제학회를 시작으로 올해 열릴 대부분 경제학회에서는 이 문제가 최대 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적인 엔데믹 첫해를 맞아 지난 3년 동안 나타난 변화를 토대로 그 답을 미리 추론해본다.
가장 큰 변화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중국을 비롯한 저임금의 저개발국 노동력 공급이 더 이상 안 되는 루이스 전환점이 앞당겨져 주요국 노동시장에서 저소득층의 수요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디지털화 진전과 고도화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 디지털화는 블루칼라를 대신할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인공지능(AI) 등이 급진전하면서 블루칼라보다는 화이트칼라가 필요 없는 시대가 닥치고 있다.
저소득층의 역습은 성장과 고용 간의 정형화된 구도도 깨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저소득층이 내몰리면서 ‘고용 창출 없는 경기 회복(jobless recovery)’을 낳았지만, 최근에는 저성장 시대가 정착되는 속에서도 실업률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고용이 풍부한 경기 둔화(job full downturn)’라는 새로운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냐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앞으로 더 강화돼 추세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중국, 한국 등 주요국은 인구절벽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데다 AI, 양자 컴퓨터 등으로 이어지는 디지털의 고도화는 이에 대한 노출도가 심한 화이트칼라와 고소득층을 더 빨리 대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 간 역순환 관계라는 피케티의 주장을 전제로 한 정책들도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주요국의 세제 정책이 ‘증세’에서 ‘감세’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법인세는 최저 수준까지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영국은 상속세, 일본은 소비세 등 상징성이 높은 세제를 폐지할 움직임을 보인다.
한국은 징벌적 세제로 각종 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결과 저성장과 증시 부진을 낳고 있다. 그나마 현 정부 들어 ‘거대 야당’의 입법 견제 속에 징벌적 세제를 하나둘씩 정상화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주주 양도소득세 완화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증시 활성화를 통한 저성장 극복과 세수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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