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무용지물 스펙은 이제 그만…'젊음'을 채용하라!
미국 대학원 석사 과정에는 30대 초·중반부터 이미 주요 기업에서 요직을 맡아온 인재들이 자기 경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공부하러 오곤 한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들의 빼어난 역량과 넘치는 자신감, 그러면서도 겸손하며 배우려는 태도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졸업 후 20대 초반부터 해당 분야에서 10여 년간 경력을 쌓으며 빠르게 성공을 경험했고 조직에서 일찍 리더로 발탁돼 사람을 대하는 스킬을 쌓을 기회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대학생들은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하거나 특별한 개인 사정이 없다면, 4~5년 안에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나 N수를 하는 것도 흔하지 않다. 대학 입학 전에 한 해를 쉬는 것을 ‘갭 이어(gap year)’라고 특별히 부르는 것처럼 휴학하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대학 학번은 졸업 예정 연도로 지정되는데, 예를 들어 2024년 졸업하는 학생들은 ‘Class of 2024’라고 한다. 이는 대학 시절 동안 동고동락한 동기들과 졸업을 기념하는 문화 때문이다.
이처럼 이르면 22세에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신입사원의 평균 연령이 30세에 육박했다는 취업 포털의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다. 22세(남성은 군 복무를 포함해 24세)에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는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 채용시장 전문가와의 대화에서 취업을 위해서는 여전히 기업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실제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영어 구사 능력과 별 관련이 없는 공인 영어시험 점수, 입사 후 직무 수행 능력을 예측하기 어려운 직무적성검사, ‘있으면 좋은’ 각종 자격증 같은 스펙을 나열해야 한다.
여기에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어학연수나 해외 봉사활동 같은 국외 경험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과 휴학이 필요하다. 이런 스펙이 기본이 되는 채용 과정 때문에 졸업 후에도 추가적인 스펙의 탑을 쌓기 위해 취업 준비에 매진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스펙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들의 업무 능력이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들린다.
실리콘밸리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부터 오픈AI의 샘 올트먼에 이르기까지 대학을 중퇴하고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많은 창업자가 있다. 그들이 대학을 중퇴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중에는 젊을수록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인지능력과 체력이 최고 수준이며,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한계에 대한 선입견이 적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있을 것이다.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인재들이 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20대 초·중반에, 실제 업무 능력과 관련 없는 스펙 쌓기에 청춘을 허비하는 것은 인적자본 활용 측면에서 국가적 낭비다.
최근 HR 분야에서는 인재 개발과 관련한 데이터 폭증과 관련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피플 애널리틱스’라는 분야가 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나 시뮬레이션 같은 기술을 이용해 조직에 적합한 잠재력 있는 인재를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최신 기술이 아직은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지원자와의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역량과 잠재력을 파악하는 전통적 방식인 구조화된 면접도 여전히 효과적이다.
한국 기업이 지양해야 할 것은 의미 없는 스펙을 엑셀 파일에 때려 넣고 필터링한 다음, 기계적으로 ‘최적 인재’를 선별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게이츠나 올트먼이 될 인재들이 스펙 때문에 서류 전형에서 불합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래 핵심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방법론인 승계 계획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윌리엄 로스웰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인재 개발의 핵심 원칙으로 적합한 인재(right person)를 적합한 자리(right position)에, 적합한 때(right time)에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기업들이 젊음과 스펙을 맞바꾸다가 인재 개발을 위한 적합한 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신년에는 지금까지의 인재 선별 및 채용 방식을 재평가하고, 미래의 인재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새롭게 탐색해보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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