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 발길 끊은 섬에 한국인 ‘바글바글’... 무슨 일? [사이공모닝]
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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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친한 동생네 부부가 베트남 남부에 있는 섬 푸꾸옥(Phu Quoc)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겨울 휴가로 푸꾸옥에 가겠다며 여행 일정을 상담하는 지인들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베트남의 최남단에 있는 푸꾸옥은 ‘베트남의 몰디브’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으로, 한 미국 여행 전문 잡지가 2년 연속 ‘아시아 최고의 섬 10선’에 선정하기도 한 곳이지요.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혼여행지로도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푸꾸옥 가는 비행기 노선이 많아지면서 한국 관광객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아니나다를까 푸꾸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국적을 조사했더니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푸꾸옥을 다녀온 동생네 부부 역시 “어딜 가도 한국 사람뿐”이라는 후기를 들려줬습니다. 야시장에도, 리조트에도 한국 사람 천지였다고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베트남 사람들은 푸꾸옥에 여행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푸꾸옥으로 향하는 베트남 국내선 노선 수가 줄고, 위기를 느낀 푸꾸옥시(市)가 관광 개선을 위한 특별 단속반을 꾸릴 정도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비싼 섬’ 논란에 특별 단속단까지
현재 베트남에서는 하노이, 호찌민, 하이퐁 세 군데만 푸꾸옥으로 향하는 국내선을 유지 중입니다. 다낭과 껀터, 냐짱에서 푸꾸옥을 오가던 국내선 노선은 중단된 상태이지요. 내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해당 노선의 승객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푸꾸옥 국제공항에 따르면 작년 1~5월까지만 해도 한 달에 16만~17만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푸꾸옥을 찾았고, 그 해 7~8월에는 내국인 관광객 수가 월평균 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3개월간 관광객 수가 반 토막 수준까지 줄어들면서 작년 푸꾸옥을 찾은 베트남 사람들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나 줄어들었습니다.
푸꾸옥시는 ‘항공료’를 관광객 급감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푸꾸옥으로 향하는 베트남 국내선 항공료의 가격이 치솟은 게 부담이 됐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연말 시즌이었던 지난달 29일부터 새해 첫 날인 올해 1월 1일까지 호찌민·하노이에서 푸꾸옥으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 값은 최대 700만동(37만80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몇 주 전인 지난달 초보다 2배 이상으로 뛴 가격입니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태국 방콕까지 오가는 왕복 항공권 가격은 490만동(26만4600원)이고, 항공권과 호텔, 관광 프로그램을 모두 다 합친 패키지여행 비용은 800만(43만2000원)동이라고 합니다. 비행 거리가 더 긴 발리까지 가는 항공권도 500만동(27만원) 수준이면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도 “푸꾸옥을 가느니 해외를 가겠다”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지요.
푸꾸옥시는 “작년 계속된 항공료 급등으로 푸꾸옥을 찾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시기인 독립 기념일(9월 2일) 앞뒤로도 내국인 방문객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가량 감소했습니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지는 통일절 연휴에도 관광객이 11% 이상 줄어들었죠.
베트남 사람들이 푸꾸옥을 외면한 이유가 항공료 뿐만은 아니라는 말도 나옵니다. 베트남 언론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호텔 객실료, 바가지요금, 택시 사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물건 강매 등도 푸꾸옥을 찾는 내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이유”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지난 11월, 푸꾸옥시는 관광서비스 품질 개선과 바가지요금을 단속하기 위한 특별 단속반까지 꾸리고 나섰습니다. 관광 가이드나 택시, 카누나 보트 같은 즐길 거리 등의 서비스 품질을 검사하고, 부당 요금을 단속하겠다는 것이었지요.
◇한국인이 대신 채운 푸꾸옥 섬
줄어든 베트남 국내 관광객 대신 ‘외국인 관광객’에 집중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푸꾸옥이 있는 끼엔장 지역의 관광협회는 대만과 말레이시아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고, 한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작년 1~9월 푸꾸옥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54만여명이었다고 합니다.
연말이었던 지난달 29일 국제선을 통해 푸꾸옥으로 입국한 외국인은 3400명으로 전날과 비교하면 1200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날 오후에만 국제선 항공기 8대가 잇달아 도착하면서 관광객들의 입국 절차가 지연되기도 했었죠. 내국인 관광객은 전날에 비해 400명가량 줄어든과 대조적입니다. 푸꾸옥에는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 몽골, 홍콩, 체코 등에서 하루에 10편가량의 항공기가 날아온다고 합니다.
연말 푸꾸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5성급 호텔들의 투숙률은 평균 80%에 달했다고 합니다. 소규모 호텔들은 투숙률이 90% 가까이 치솟으면서 사실상 ‘만실’ 사태를 겪었죠.
베트남 사람들이 외면한 푸꾸옥을 채운 주 고객은 한국 관광객이었습니다. 작년 1~11월 인천~푸꾸옥 노선 이용객은 29만6669명으로, 작년 한해동안 우리나라에서 푸꾸옥을 찾은 관광객만 3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합니다. 후인 꽝 흥 푸꾸옥 인민위원장은 “푸꾸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35% 이상이 한국 관광객”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연말까지 따져보면 한국인 관광객 수는 푸꾸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된다는 추정도 나옵니다.
푸꾸옥을 찾는 한국 사람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 항공사들이 한국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 위한 푸꾸옥행 항공 노선을 늘리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진에어는 인천~푸꾸옥 노선을 취항했고, 베트남 민간 항공사인 비엣젯항공은 같은 달 부산~푸꾸옥 노선을 신규 취항했습니다. 인천공항이 아닌 지방 공항에서 푸꾸옥 노선을 운항하는 것은 비엣젯항공이 처음입니다. 앞서 대한항공도 지난 11월부터 인천~푸꾸옥 직항 노선을 운항하기 시작했지요.
한국 건설 업체가 푸꾸옥에 테마파크를 열기도 합니다. 대우건설이 지난달 말 푸꾸옥의 고급 주거 단지에 연 ‘아이스정글’이 바로 그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없어 눈을 보기 힘든 베트남 남부 지역에 얼음과 눈을 주제로 한 1만3000㎡ 규모의 ‘야간형 테마파크’를 조성했습니다. 평범한 테마파크처럼 보이던 공간이 밤에는 미디어 아트를 통해 겨울 왕국으로 변신합니다. 눈이 내리고, 얼음으로 만들어진 동굴을 거니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죠. 사계절 더운 날씨로 눈을 보기 어려운 베트남 남부 지역에서 캐릭터와 눈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생기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몰릴 거라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푸꾸옥은 ‘베트남의 제주도’로 불리기도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던 것을 생각하면 비슷한 지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제주도와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작년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1334만3849명) 중 내국인 관광객은 전년(2022년)보다 8.2% 줄어든 1263만6834명이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기간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이 늘었으나 2명이 가도 3인분을 시키라는 고깃집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받는 식당들,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 등으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엔데믹으로 해외 방문이 가능해지고, 엔저(円低)로 일본 관광 비용이 저렴해진 작년에는 “제주도 대신 해외를 가겠다”는 사람이 늘며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이 줄어들었죠.
내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는 것마저 푸꾸옥과 제주도가 비슷한 것은 조금 씁쓸할 따름입니다. 관광객이 늘면 물가가 오르는 게 당연하다곤 하지만, 오랜 기간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려면 적절한 물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푸꾸옥도, 제주도도 내국인 관광객에게 오래 사랑받는 관광지로 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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