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심… 21세기에도 이런 참혹한 일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50, 60대 여성 2명이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다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였다.
더 충격적인 건 "숨진 여성 중 1명의 남편과 딸이 공모한 살인"이란 수사 결과였다.
잊히는 듯했던 '독(毒) 막걸리' 사건은 14년여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딸이 저(와) 함께 엄마를 죽였다고 인정했다면 저도 인정합니다.’ 백 씨는 용의자로 검찰에 체포되던 날 자술서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 한 문장을 썼다. 열흘 뒤 작성된 추가 자술서에는 상세한 범행 경위가 깔끔한 글씨체로 적혀 있다. 검찰은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딸이 이를 눈치챈 어머니를 살해하려 아버지와 짜고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백 씨 모녀의 자백을 주요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1심은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해 무죄로 봤지만 2심, 3심은 “범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진술”이라며 유죄 판결했다.
▷재심은 판결 확정 뒤에 무죄 증거가 새롭게 나오거나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가 확인될 경우 가능하다. 이번 재심 결정은 후자에 해당한다. 당시 조사 녹화 영상에는 범행을 부인하는 백 씨 부녀를 상대로 유도 심문이 집요하게 반복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검사가 자백 진술서를 받기 위해 한글을 잘 모르는 백 씨에게 ‘당신이 불러주면 직원이 대신 쓸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백 씨와 발달장애를 가진 딸은 체념한 듯 질문마다 “네”라고 짧게 답했다.
▷검찰은 증거를 취사 선택해 불리한 건 법원에 내지 않았다. “(백 씨처럼) 오이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해충을 없애려 청산가리를 사용한다”는 일부 진술만 제출하고 “그건 유황가루를 오인한 것이고, 청산가리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오이농부 수십 명의 진술은 숨겼다. 또 부녀가 막걸리를 사왔다는 순천의 국밥집 인근 폐쇄회로(CC)TV를 통째로 확보해 범행 관련 행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도 법원엔 “CCTV 기록이 없다”고 했다.
▷사건을 초동 수사했던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 순천지청 K 검사는 꿰맞추기 수사로 백 씨 부녀를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부녀가 재판에서 자백을 번복해 무죄를 호소했음에도 유죄가 확정됐을 때 K 검사는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에서 정의를 실현한 스타 검사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에서도 재심을 거쳐 진범을 잡은 사례가 있지만 21세기에도 이런 억지 수사가 통한 것이다. 강압 수사를 한 검사는 물론 이를 검증하지 못한 법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정은, 韓엔 연사흘 포격… 日총리엔 “각하” 대화손짓
- [정용관 칼럼]이재명 피습… 늘 지나침은 역풍을 부른다
- [속보]‘민주당 탈당’ 이상민, 국민의힘 입당
- 총선 앞두고 “여론조사기관 88곳중 30곳 등록취소”
- [단독]“장하성, 김수현-윤성원에 통계유출 지시 정황”
- 美국방장관 사흘 ‘실종’에 발칵… “백악관에 보고 없이 수술-입원”
- 눈이 자주 피로하고 이물감이 들 때가 있다
- ‘尹측근’ 주진우 부산 출마 유력… 당내 “용산참모 쉬운 지역 노려”
- 친명 정봉주 등 ‘2차 자객 출마’… 비명 “수십곳 복수-증오 표적”
- 이낙연, 이번주 탈당 예고… “인사 드리고 용서 구할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