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엄마 미안해, 괜찮아’가 깨우친 것

2024. 1. 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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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에 대한 관념이 약해지고 있다.

사회가 고령화하면서 부양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커진 탓이다.

효행을 장려키 위해 90여개 지자체가 효자, 효녀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사회적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노선인 데다 '무임승차자 노인'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노인들의 집합처로 인식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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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등장… 효의 진화
세대 간 연대와 소통 공간 확장
노인들 집합처 상징하는 ‘1호선’
숨고 움츠러들고… 보호·포용 필요

효(孝)에 대한 관념이 약해지고 있다. 사회가 고령화하면서 부양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커진 탓이다. 효자를 만든다며 ‘효행장려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 법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법이 효심을 키울 거라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효도수당’의 약발도 제한적이다. 효행을 장려키 위해 90여개 지자체가 효자, 효녀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사회적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이러다 보니 ‘효의 종말’이란 진단도 나온다. 작가 송길영은 신간 ‘시대예보’에서 어른이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장성하여 어른을 돌보는 ‘상호부조 시스템’이 붕괴했다고 진단한다. 흥미로운 건 노년층이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액티브 시니어’가 등장하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이성 교제에 빠지고, 임영웅 팬클럽에 가입하는 노년층이 늘고 있다. 내가 벌어 내가 쓴다는 인식은 기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이렇게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움에 적응하려는 신중년의 ‘일신우일신’은 희소식이다. ‘돌봄의 대상’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에 스스로 도전하면서 독립성과 책임을 추구한다. 세대 간 연대와 소통의 공간을 넓힐 좋은 기회이다. 그런데도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나, ‘과연 효도는 끝났는가?’ 둘, ‘일신우일신은 이상인가 현실인가?’

#장면 하나. “엄마미안해엄마미안해…” 엄마미안해×20. 임영웅 콘서트 티케팅에 실패한 딸이 트위터에 올린 반복 문구이다. 곧장 ‘영웅시대(임영웅 팬클럽 이름)’ 팬덤인 어머니 한 분이 ‘괜찮아’라는 위로의 멘션을 달았다. 두 사람은 실제 모녀 관계는 아니지만, 어머니세대·딸세대의 유대를 일깨웠다. 이 트윗은 실제 많은 이들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1만회 넘게 리트윗되었다.

트위터에 또 다른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임영웅 콘서트가 끝난 후 어머니들을 픽업하기 위해 콘서트장 앞에 장사진을 친 딸들의 무리이다. 이 속에 수줍은 표정의 아들들도 끼어 있다. 기다리는 면면이 사뭇 진지하다. 주최 측은 이들을 위한 공간과 좌석을 조성해 능동적인 팬서비스에 나섰다. 이러니 임영웅 콘서트는 세대가 하나 되고 부모는 회춘하는 장이 된다. ‘피케팅’(피 튀기는 예매 전쟁)이 벌어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렇듯 어머니의 취미생활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딸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효도의 장면을 목격한다. 티케팅을 돕고, 픽업을 준비하는 자녀의 성심이 없다면 과연 ‘액티브 시니어’가 가능할까? 용돈이나 보약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효도 문법을 벗어났을 뿐, 가족의 유대는 계속된다. 문화를 매개로 세대 화합도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효도는 종말을 고하지 않았다고.

#장면 둘. ‘1호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온라인에 떠도는 유명한 구절이다. ‘굉음의 악마’ 5호선, 완행 급행이 냉온탕이 되는 ‘두 얼굴의 악마’ 9호선, 지하철 노선별로 오명이 넘치지만, 그중 압권은 ‘대악마’로 불리는 1호선이다. 노후 노선인 데다 노숙인, 행상인, 취객이 함께 몰리며, ‘움직이는 할렘가’로 통한다. 팩트체크해 보면 진짜 ‘대악마’는 1호선이 아닌, 2호선이다. 민원 건수 1위에, 성범죄를 포함한 범죄 건수 1위가 2호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1호선은 ‘대악마’라는 오명을 얻었을까?

노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노선인 데다 ‘무임승차자 노인’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노인들의 집합처로 인식된 탓이다. 실제 많은 노인이 1호선 타고 전시 보고, 도시락 먹고 또다시 지하철로 돌아온다.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일신우일신이란 닿을 수 없는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인 빈곤 세계 1위, 노후 준비된 75세 이상 고령자 비율 43%,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효에 관한 논쟁을 보며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자녀 세대는 효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고로 세대 간 화합의 문은 열려 있다. 둘째, 새로운 가족 간 화합과는 별개로 스스로 숨고, 움츠러드는 시니어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들을 보호하고 포용하는 것, 국가가 또 우리 각자가 느껴야 할 책임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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