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게임 세상] ‘편취와 이중잣대’ 넥슨의 뿌리 깊은 문제
모든 이의 새해가 희망차길 바라지만, 넥슨의 새해만큼은 무겁게 시작된 듯하다. 지난 3일 공정위에서 넥슨에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정위에서 부과했던 과징금 가운데 역대 최고 금액이다. 지난해 말 이른바 ‘집게손가락 논쟁’으로 각종 언론사 지면에 넥슨의 이름이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내렸지만, 이번 과징금은 그것과는 다른 사안이다.
이번 심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와 관련이 있다.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아이템은 구매한다고 해서 모두가 늘 같은 결과를 얻는 게 아니다. 확률에 따라 최상급의 결과가 나오기도, 평범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확률형 아이템은 이용자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확률형 아이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확률’이다. 얼마나 큐브를 구매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사용자로서는 구매를 고려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넥슨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조정하면서도 이를 공지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용자들이 문의했을 때에도 ‘변경된 건 없다’며 거짓말을 했다. 이번 공정위의 심의는 확률을 조정한 이후 넥슨이 이에 대해 공지하지 않았거나 거짓말을 했던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메이플스토리>만이 아니라 넥슨이 운영하는 다른 게임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진 바 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문의가 접수되자, 넥슨에서는 “적절한 시점까지 답변 진행을 홀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는 불과 몇 개월 전 ‘집게손가락 논쟁’ 때 보여준 넥슨의 ‘신속한’ 대처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당시 <메이플스토리>의 외주 스튜디오가 제작한 캐릭터 홍보 영상에 ‘집게손가락’이 포착되었다며 문제가 제기된 건 11월25일이다. 바로 다음날 넥슨에서는 사과문을 발표했고 27일에는 <메이플스토리>의 담당 디렉터가 라이브 방송을 켜고 엄정 조치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2016년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 사진을 SNS에 게시했을 때도, 넥슨은 단 하루 만에 성우를 교체하겠다는 입장문을 밝혔다. 당시 넥슨은 언론에 “게임을 하는 이용자들의 동향에 민감하게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호소한 바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정작 이용자가 직접 접수하고 제기한 <메이플스토리> 확률형 아이템 문의 건에 대해서는 답변을 ‘홀드’하면서, 게임 안팎의 페미니즘 이슈에 반발하는 이용자의 ‘동향’에만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것이. 공교롭게도 넥슨이 신속하게 대처했던 이슈들은 성우나 외주 스튜디오 등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에 그 책임을 떠넘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공정위 결과가 발표된 이후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들은 유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을 열고 ‘용사님들’의 신뢰를 회복할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넥슨은 용사님들의 신뢰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여태 보여준 이중적 행보로 인해 사회의 신뢰마저 잃었다. 무엇보다 회사가 쌓아야 할 신뢰란 이용자들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즉각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데에 달려 있다. 넥슨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도외시하고, 매번 도망칠 구석이 있는 이슈에서만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반응해 왔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넥슨은 살아남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지금 넥슨은 편취와 이중잣대의 대명사다. 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대체 어디에서부터 회복해야 하는가. 넥슨 앞에 남겨진 숙제는 그들의 생각보다 더 뿌리 깊은 문제일지 모른다.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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