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유감(有感)과 유감(遺憾)

기자 2024. 1. 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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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을 받아 입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혼란한 정치로 인해 피해를 입는 국민을 보면 느끼는 바가 있어 유감(有感)이다. 그러나 ‘쌍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나 혐오와 극단의 정치를 보면 불만이 있어 유감(遺憾)이다. 최근의 사태들은 모두 같은 맥락에 서 있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인권 침해가 우려”되고 ‘50억 클럽 특검법’에 대해서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방탄이 목적”이라고 거부권 행사의 이유를 밝혔다. 자신들이 볼 때에도 국민에게 미안했는지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민 대다수가 좋겠다고 생각하면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 대다수가 좋겠다고 생각한’ 특검법은 거부했다.

합리적 선택이다. 얻을 것을 따진 게 아니다. 덜 잃을 것을 선택한 것이다. 특검이 실행되면 특검 정국이 총선 때까지 이어지고 드러날 진실이 더 치명적이라 판단했을 터다. 차라리 총선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시기에 거부권을 행사해 여론의 지탄을 받더라도 다른 이슈들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2부속실 언급은 그 지탄을 상쇄하려는 고육지책의 하나다. 물론 제대로 된 고육지책이 되려면 대통령 가족 등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임명까지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선 여야 추천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고, 제2부속실 설치도 실현될지 미지수다. 고육지책이 아닌 고육지책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다.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미 김건희 특별법을 ‘총선용 악법’으로 규정한 법무부 장관을 정치 사회로 보내 진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이임식에서 ‘동료 시민’을 언급하고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운동권 특권세력’을 강조했다. 그가 볼 때 우리 사회는 운동권 특권세력 지지자와 동료 시민들로 구성되며, 작금의 정치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동료 시민 대표의 싸움이다. 야당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은 동료가 아니라 적으로 인식된다.

독일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친구(동료)를 나누는 것’으로 규정했고, 이 규정은 나치즘의 정치 사상으로 수용됐다. 나치즘은 극우주의와 부정적 포퓰리즘이 결합한 극우 포퓰리즘이다. 원래 포퓰리즘은 사회를 엘리트와 인민의 대립 구도로 보고 인민을 대변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부정적 측면인 포퓰러리즘은 권력 장악을 위해 대립 구도를 적대 구도로 몰아가며 인민을 수단으로 동원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수락 연설은 민주당과 진보 진영을 ‘특권세력’으로 보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동료 시민’으로 호명한다. ‘동료 시민’은 대다수 국민을 호도해 극우 포퓰(러)리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표현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우므로 그의 주장을 나치즘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언술은 유사하니 유감(有感)이고 유감(遺憾)이다. 수락 연설은 정당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취임사가 아니라 전투에 나서는 선봉장의 출정 선언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술과도 많이 닮았다. 대통령 연설비서관이 써준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러한 갈라치기와 선동은 극단적 행동과 혐오 정치를 더 부추길 수 있다.

과연 정치인 한동훈에게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은 기회인가. 앞으로 해나가기에 달렸겠지만, 수락 연설과 거부권 대응으로 볼 때 그것은 독배에 가깝다. 총선 실패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가 될 것이고, 정치인 한동훈은 윤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락 연설에서 한 위원장은 독립 투사의 뜻을 강조했다. 윤봉길 의사는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돼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과 한 위원장에게 ‘너희도 욕심이 있고 권력이 있다면 반드시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돼라’고 주문한다. 한용운 선사의 <님의 침묵>은 ‘미리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했던 거부권 행사는 뜻밖의 일이 되고, 분한 가슴은 또다시 절망에 휩싸입니다’로 굴절된다. 윤봉길 의사와 한용운 선사가 목숨 바쳐 세우고자 했던 나라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의해 절망에 빠질 것인가.

희망도 있다. 수락 연설에서 제시한, “공직을 방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 특권 의식 없는 분들만을” 공천하겠다는 약속만 지켜도 정치인 한동훈의 전망은 어둡지 않다. 비대위원장으로서의 광폭 행보가 어떤 맥락에서 전개될지 주목된다. 21세기 초의 우리 국민은 히틀러와 나치를 지지한 20세기 초의 독일 국민과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한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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