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누가 중대재해법 무력화하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으나 마나 한 종이호랑이법이 될 처지에 놓였다. 중대재해법은 문재인 정부 때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3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한 채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당선 초기부터 경제계의 입장을 대변하듯 중대재해법을 과잉입법으로 몰아세웠다. 1월27일이면 3년간 유예된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적용시기를 2년 더 늦추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총 등 경제 6단체도 이달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해달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예를 요청하는 주요 논리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취약성, 준비부족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대재해법의 범위를 축소하고 유예했던 논리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과 닮아 있다. 지금까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에 대해서 중소영세 기업들의 고충이나 이해를 대변하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나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미는 카드가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경제활동 위축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대기업과의 불공정한 거래로 인해 중소기업의 취약성이 구조화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빼놓고 중소기업의 취약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원청과 하청 간의 거래가 얼마나 중소기업을 짓누르고 있는지 모르는 정치권력이 없음에도 어느 정권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경제계의 입장에 대해 보수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휘둘려왔다. 특히 지금처럼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의 행보는 위태롭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7일 김용균 사망사고 관련 대법원 무죄 판결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쏟아냈지만 정작 정부와 여당의 ‘50인 미만 사업장 추가 유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정부의 공식 사과와 산업안전을 위한 구체계획, 2년 적용유예 뒤 모든 기업에 적용’ 등을 포함한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다.
법이 존재하되 법의 위력을 제거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다. 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시기상조와 사회적 수용성을 거론하며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광범위한 예외를 허용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만 얼마만큼 정치적인 테크닉이 구사되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까 중대재해법은 민주당식 법 허물기와 윤석열식 법 허물기 방식이 교차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이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친기업적 얼굴을 드러낸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쟁이 심화될수록 ‘시기상조’ ‘단계적 적용’ ‘과도한 엄벌주의’ 같은 합리적 수사 아래 가려진 계급적 이해가 드러난다. 국민의힘과 별다를 게 없는 민주당, 윤석열과 큰 차이 없는 이재명에게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 70%가 넘는 중대재해법 적용유예 연장 반대 여론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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