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두더지

기자 2024. 1. 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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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버린 시간을 애도하며

누가 말했는가 밑바탕이 무너지고 있다

인간은 철새처럼 이동해야 할 것

지구를 떠도는 에너지들 과잉들

확성기가 침묵의 끝에 닿을 때 천둥 쳤다

지난날 당신은 꿈이 있었다 들끓는 개미 어쩔 수 없는 마음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

이해한다는 말은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과 닮았다

최지인(1990~)

사랑과 희망으로 들끓어야 할 젊은 시인의 시에서 죄책감과 위태로운 미래를 먼저 읽게 된다. 시인은 “보내버린 시간을 애도”하며, 무너져내리는 삶의 “밑바탕”과 흘러넘치는 지구의 “과잉들” 앞에서 침묵하는 당신과 나의 죄를 묻는다.

거짓과 음모의 혓바닥들은 갈등과 혐오를 일으켜, 하늘을 흐리게 하고 땅을 질척이게 만든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의 등을 밀어버리고, 돌멩이로 진실의 입을 틀어막는다. “확성기”는 켜져 있으나 들리지 않는다. 그 “침묵의 끝”에는 천둥이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한때 꿈이 있었지만 지킬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소음과 진동을 피해 땅속으로 움츠러들었다. 당신은 돌멩이를 피했고, 입술을 지워버렸다.

시인의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라는 질문은, 당신의 죄는 나의 죄일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죄는 결국 이 세계가 만들어 놓은 덫이라는 것이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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