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 검사정권과 경제민주화
군사정권은 개발도상국에서 군인이 상대적으로 교육을 잘 받는 엘리트 집단인 경우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직업이 국가를 장악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국에도 두 번의 쿠데타가 있었다. 정당성이 문제가 되니, 공작정치와 언론장악이 중요했다.
검사정권이라는 용어가 지금의 한국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개념일까? 단순히 검사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법무부 장관을 하던 한동훈이 집권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지금, 생소했던 검사정권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사정권의 극명한 폐해로 볼 수 있는 두 장면을 떠올린다.
첫 장면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다. 올해만 해도 2023년 대비 4조6000억원을 삭감했다. 군사정권 때에도 카이스트를 설립하는 등, 개도국 중 공격적 연구·개발을 한 나라가 한국이다. 지금 연구 현장에선 실험을 담당하는 실무 연구진들의 해고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공공연구를 떠나 기업이나 외국으로 진로를 모색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연구·개발에 대한 이러한 몰이해는 외국과 공동 연구·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기이한 방침과 연결된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대폭적으로 연구·개발비를 늘린 이유는 기존의 수출 보조가 어려워지자, 이걸 연구의 공공성으로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국가 혁신체계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폼이 난다고 그냥 외국 연구기관에 대대적으로 개발과제를 주는 것은, 이런 전략과 맞지 않는다. 민감한 연구 성과는 비밀 유지가 핵심인데, 외국과 공동개발하는 것이 제도 혁신이라는 것은 갖다붙인 말이다. 외국과의 공동연구는 어디까지나 국가 연구체계의 보완재이지, 핵심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국회도 장악하면 검사정권 완성
두 번째 장면은 검사 출신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월권이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과정은 SBS 방송국의 소유주라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물론 나도 태영이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건 채권단이 논의할 일이지, 금감원장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은 아니다. 정부 부처인 금융위와 달리 금감원은 엄연히 민간기구다. 금감원의 업무는 은행 등 금융의 일탈을 감시하는 일이지, 민간기업의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곳이 아니다. 아무리 관치금융이라 해도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금융업무도 검사들이 하는 게 되었다는 거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부산에 재벌 총수들이 대거 몰려가 떡볶이를 먹은 사건과 연결하면, 정권과 기업의 수직적 상하관계가 드러난다. 은행들도 검사들 말 한마디에 이자를 대폭 내리거나 사회기금을 내놓는다. 관치금융이라는 한국 경제의 약점이 금감원장과 함께 더욱 강화되고 있다.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할 금융 시스템이 검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군인들에게 국가 장치를 되돌려 받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긴 세월이 흘렀다. 이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기구와 정당이 검사들에게 장악된 지금, 마지막 남은 건 국회다. 국회도 검사들이 장악하면, 명실상부 검사정권이 완성될 테다.
많은 사람이 경제민주화를 분배의 강화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나는 경제민주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고 본다. 보수 경제학자인 하이에크는 시장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우수한 것은 바로 이 ‘과정’ 때문이라 했다. 그는 사회주의는 상명하복 시스템이어서, 서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시장 과정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한국 경제를 장악한 검사들이 망가뜨리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이다. 누구든 잡아갈 수 있다고 잔뜩 겁을 준 다음,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게 검사식 경제운용의 핵심이 되었다. 연구·개발비 삭감도 아무도 그 이유와 기준을 알지 못한다. 카르텔로 몰릴까봐 핵심 연구진들이 벌벌 떠는 사이, 장관 대신 차관들이 용산 ‘오더 처리’를 한 게 한국의 과학기술이 지금 연구진 대량해고에 내몰린 사건의 실체다.
돌아오는 밀실경제와 관치금융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를 1인당 경제성과로 추월하기 직전이었다. 검사정권과 함께 아마 다시 일본과 한국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국지전 위기는 똑같이 겪었지만, 검사들의 상명하복 시스템으로 이 위기가 한국에서 더 증폭된 것이 현실이다. 경제 과정의 상명하복화, 이게 검사정권의 가장 큰 문제다. 밀실경제와 관치금융이 돌아오는 중이다.
한국 경제는 군사정권도 극복했듯, 검사정권도 언젠가는 극복할 것이다. 여전히 핵심은 경제민주화다. 과정을 생략한 상명하복 경제로는 과학생태계도, 산업생태계도, 그리고 지역생태계도 위태롭다. 이런 상태로 “마음껏” 뛰기엔 한국 경제 규모가 너무 커졌다. 검사들의 호통만으로는 이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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