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태열, 일본 재상고 직후부터 강제동원 재판 지연 모색

장예지 기자 2024. 1. 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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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파견-강제동원 재판거래 의혹 부인
“기억하지 못 해…얘기 있었다면 덕담”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태열 전 유엔대사가 2023년 12월20일 오전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세종로대우빌딩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열리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조 후보자의 이른바 ‘재판거래’ 연루 의혹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7일 한겨레가 살펴본 2020년 8월2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재판 기록에는, 조 후보자가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재판거래’ 의혹이란,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 해외 파견 확대 등을 위해,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전범기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 판결을 지연시켰다는 의혹이다. 당시 조 후보자는 외교부 2차관(2013년 2월~2016년 11월)으로서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과 △2015년 6월 △2015년 8월 △2016년 9월 등 세 차례 만나, 재판 관련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 문제를 협의했다.

2020년 8월21일 재판 기록을 보면, 조태열 당시 2차관은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 승소라는 대법원 판결에 일본 기업이 불복해 2013년 8월 재상고한 직후부터 재판을 지연시킬 방안을 모색했다. 그는 같은 달 외교부 2차관실에서 법률전문가 간담회를 직접 주재했는데, 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보고 문건엔 “대법관을 직접 접촉해 설명하기 어려울 경우 세미나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정부 입장 전달을 시도”라고 적혀 있다. 대법원 판결이 조기 선고될 경우의 문제점에 관해 외교부의 의견을 대법원에 전달할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 후보자는 재판에서 “사법부가 행정부와 조율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볼 순 있다”면서도 “외교부로선 수수방관할 수 없어 방안을 모색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조 후보자는 2013년 12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강제동원 문제를 논의하려고 연 ‘소인수 회의’(청와대·대법원·외교부·법무부) 때 보고된 외교부 문건 작성에도 관여했다. 이 문건엔 “배상판결 확정시 한일관계 총체적 파국 초래”, “대법원 심리시 기존 판결에 대한 재검토 긴요”, “전원합의체 심리 및 지연요청” 등이 기재됐다. 피해자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의 문제를 지적한 내용이었다. 조 후보자는 재판에서 “제가 전반적으로 (문건을) 다듬었다”고 증언했다.

의견서 논의를 위한 조 당시 차관과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2015년 8월 두번째 만남을 앞두고 외교부가 만든 ‘언급 필요사항’ 문건에는 △의견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요소 △의견서 내용을 비공개로 할 수 있는지 △보충 의견 제출이 가능한지 등이 기재됐다. 재판에서 조 후보자는 “이 중 한두 가지는 (임 차장에게) 이야기한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인사청문회를 위한 국회 답변서에 “외교부 제출자료 내용을 두고 법원행정처와 협의하지 않았다”고 한 것과는 반대되는 정황이다. 그 만남에 동석했던 김인철 당시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은 “의견서 초안을 임 차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지만, 조 후보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조 후보자는 재판에서 “법관 파견 문제를 논의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이 2015년 6월 임 차장과의 만남을 두고 조 후보자에게 “(증인이) 당시 임 차장에게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는데 기억나느냐”고 묻자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얘기가 있었다면 덕담 정도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2016년 9월 임 차장은 조 당시 차관을 세번째 만나 ‘11월 초까지 의견서를 제출해달라’는 뜻을 전했고, 외교부는 그해 11월29일 ‘강제동원 배상 책임이 인정될 경우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대외 신인도가 손상될 것’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조 후보자는 의견서와 관련해 “제가 (감독해) 만든 것”이라며 “국제법적, 외교적 함의를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서술을 원했고, 제가 가진 최대한의 지식과 외교적 센스를 발휘했다”고 재판에서 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근혜 정권이 교체되고 2018년 10월에야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소를 확정했다. 그사이 원고였던 피해자 4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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