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성동초등학교 졸업식
‘자유의 마을’로도 불리는 대성동 마을은 비무장지대(DMZ)에 남아 있는 유일한 남측 마을이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당시 남북이 비무장지대 안에 마을을 하나씩 두기로 한 합의에 따라 조성됐다. 북한에 만들어진 기정동 ‘평화의 마을’과 800m 거리에 맞닿아 있다. 1970~1980년대 냉전시대엔 남북이 태극기·인공기 게양대를 더 높이겠다고 경쟁해 관심을 모았다. 마을 왼쪽으로 400m만 가면 군사분계선이 나오는 접경지라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지만, ‘장단콩’ 재배로 유명한 행정구역은 경기 파주시 장단면 조산리다. 현재 50여가구, 주민 140여명이 거주한다.
대성동초등학교는 이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이다. 학생 22명으로 1954년 개설된 마을 자치학교가 모태다. 1980년대부터 6학급으로 운영되다 2007년 전교생이 8명으로 줄어 폐교 위기에 처했으나 분단의 상징성을 가진 학교라는 여론에 힘입어 존속됐다. 지금은 전교생 30명이 다니고 교직원 22명이 근무한다. 유엔군이 영어를 가르쳐주는 영어특성화학교로 지정돼 있고, 외부 학생도 입학할 수 있다.
지난 5일 이 학교 강당에서 55번째 졸업식이 열렸다. 여학생 3명, 남학생 2명이 졸업해 이 학교 졸업생은 226명으로 늘었다. “소중한 꿈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빛나는 너희들을 응원해”라고 적힌 현수막 아래 단상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유엔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졸업생 부모와 가족뿐 아니라 한국·미국 군인들과 파주시·통일부 관계자 등 100여명이 축하객으로 와서 상장·선물을 전달한 게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유엔군사령관 관할 학교라 정문과 교내 곳곳에 군인들이 경비를 선 것도 생경했다.
때마침 졸업식은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해안포 해상 사격을 한 시간에 진행됐다. 북한의 도발 소식은 졸업식을 마친 오후에 알려졌다. 하지만 군 관계자 축사 중엔 엄중한 안보 상황을 반영하듯 “안보와 세계평화를 위해 큰 기여를 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라”는 얘기가 불쑥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기뻐하며 졸업식을 마쳤다. 9·19 합의 전면 파기 후 연말연시 남북 간 말폭탄이 험해지고, 남쪽에선 개성공단지원재단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 후 서해에서 남북 포성이 터진 날 최북단 대성동에선 아는 듯 모르는 듯 ‘특별하지만 평범한’ 졸업식이 열렸다. 아이들이 안보·평화 걱정 없이 저마다의 꿈을 키워가면 좋겠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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