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학벌추앙 시대와 이재명 轉院
지난해 12월 발표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자는 19세의 재수생이었다. 당시 언론보도는 뇌과학자가 꿈인 수능 만점자가 과학탐구 선택과목 차이로 서울대 의대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 이를 제목으로 보도했다. 해당 수험생이 서울대에서 요구한 물리와 화학 대신 생물과 지구과학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과학탐구 과목 선택처럼 대학도 하나의 선택이었지만 언론은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의대가 아닌 다른 대학 의대로 진학하는 것을 낯설어했다.
이튿날 표준점수 전국 1등인 재수생이 서울대 의대를 지원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능시험에서는 비록 한 문제를 틀렸지만 상대적으로 난이도 있는 과목을 선택해 표준점수로 계산하면 전국 1등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해당 재수생은 지난해 성균관대 의대에 합격한 뒤 재수를 선택, 입시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외롭고 힘겨운 재수 생활을 견뎌내고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혹시 '서울대 의대 합격'이라는 외길을 목표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안쓰러웠다. 지난 2022학년에도 수능시험의 유일한 만점자는 고려대 행정학과를 다니던 반수생이었다. 그는 기숙학원에서 반년을 더 공부해서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성균관대 의대 합격생도, 고려대 행정학과 재학생도 실패자가 되는 사회다. 무엇을 공부하느냐를 묻지 않고, 어느 대학을 다니는가만을 묻는 사회다.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대신에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잣대다. '학벌 없는 사회'에 대한 외침은 30여년 전부터 지속되었지만 별 성과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학벌에 대한 추앙은 더 노골적으로 심해졌다. 언론과 기업, 정치권 등 사회 전체가 학벌을 '사람 판단'의 1차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근 불거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서울대병원 전원(轉院) 논란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을 들렸다가 지지자로 가장한 60대 남성에게 습격당했다. 이후 이 대표는 부산대병원 외상센터 응급실에서 긴급치료를 받은 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가족들의 간호 등을 고려한 이송이었다는 민주당의 설명이다.
경황이 없던 중에 내린 우발적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제1야당 대표라는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더구나 이 대표를 초기 치료했던 부산대병원 의사가 이송을 반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목은 민감한 부분이라 후유증을 고려해 (수술을) 잘하는 곳에서 해야 할 것"이라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마저 알려졌다. 야당 대표와 최고위원이 지역의료를 불신하고 서열화하는 모습은 어떤 이유이든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사실 부산대병원의 위상은 과거만 못하다. 한때 서울대병원 버금간다는 부산대병원이었지만 지금은 지역환자들조차 서울대병원-삼성병원-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으로 원정 치료를 떠나는 판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대표는 부산대병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술인데도 헬기까지 동원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서 수술받았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4년 연속 A등급을 받는 등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외상치료 의료기관이라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은연중에 서울대병원이 우등재이고, 지역의 부산대병원은 열등재라는 생각을 그대로 표출한 셈이다. 그렇기에 "지방소멸 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라던 이재명 대표의 당일 연설은 공허해졌다.
오는 9일부터 2024학년도 대학 입시 정시전형이 본격 시작된다. 수험생들은 토요일인 6일까지 대학지원을 마친 상태이다. 요즘 수험생들에게 서열화된 학교는 하나의 계급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끼리끼리 의식을 공유하고, 타인을 비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서울대-연대-고대-포스텍-카이스트'보다도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를 우대하기도 한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이들 수험생에게 대학 서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학 진학 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해줘야 한다. 인생은 19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 설사 대학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길은 많다고. 하지만 불행히도 성대 의대에 합격하고도, 고대 행정학과를 다니다가 반수를 통해 서울대에 진학하는, 서열화된 학벌을 추앙하는 19세 젊은이들을 말릴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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