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균 칼럼] 태영건설과 질서있는 구조조정
태영건설의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데드라인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 개시 시한인 오는 11일. 태영그룹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채권단이 납득할 만한 자구계획을 제시해야 할 상황이다.
여론도 태영 측에 결코 우호적이지는 않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남의 뼈 깎기'라며 추가 자구안을 요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통령실까지 압박 행렬에 가세했다. 최고 수준의 '구두(口頭) 압박'이다.
태영은 정부와 채권단의 신뢰를 회복할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태영을 향한 불신은 태영그룹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가 1549억원 가운데 890억원을 티와이홀딩스 연대보증 채무 상환에 쓰면서 증폭됐다. 채권단은 이 890억원이 즉각 태영건설 지원에 사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주의 추가 사재 출연 여부도 관건이다. 태영의 자구안 발표 전 업계에서는 사재출연 규모로 '3000억원+알파'가 언급됐다. 하지만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사주 일가가 출연한 사재는 총 484억원. 채권단은 자구안과 중복되는 금액 등을 빼면 실제로는 68억원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알짜 회사인 SBS 지분 매각에 대해서는 태영측은 여전히 선을 그으며 채권단을 자극하고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태영 측 행보를 보면 대주주 살리기와 SBS지키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주주 일가가 사실상 백의종군의 자세를 보여도 400개가 훨씬 넘는 채권단의 동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태영건설 사태는 태영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통령실까지 가세한 것은 현 상황을 그만큼 엄정하게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은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질서있는 구조조정'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말 기사회생한 워크아웃 제도의 1호 신청 기업이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향배가 추후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 작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은 가계부채와 함께 현재 한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핵심 난제 중 하나다. 지난해 정부는 대주단을 구성해 부동산 PF의 만기 연장 등을 통해 위험을 이연해왔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미룰 경우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음까지 감수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이 같은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정부는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를 선언하며 부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부동산 PF 보증잔액은 134조3000억원이다. 연체율은 계속 올라간다. 이중 절반인 70조원이 부실 가능성이 있다는 추산도 나온다. 증권사나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시스템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부동산 경기도 다시 위축되고 있다. 기준금리가 더 이상 오르지 않더라도 당분간 연 3%가 넘는 중금리 시대가 이어질 전망이다. 어느 하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선거의 해'에 표를 깎아먹을 수도 있는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을까.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협의가 난항을 겪으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부동산 PF 비중이 높은 건설사들의 명단과 재무상태가 나돌고 있다. 해당 업체들은 "문제없다"고 적극 해명하고,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협력업체의 한 대표는 7일 디지털타임스에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 발표만 믿고 워크아웃 개시를 뜬 눈으로 기다리고 있다. 협의가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에 애간장이 타들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과거 대우건설 등 부실기업 정리 사례를 통해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었다. 바로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다. 대주주의 충분한 고통분담 없이는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실패의 교훈'이다. 태영건설만이 예외일 수는 없다. 태영건설 대주주 역시 이제는 제대로 답해야 한다. 채권단 앞에서 흘린 창업회장의 눈물에 진정성을 더 담아야 한다.
정부 역시 제대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부동산 PF 정리 과정에서 돌출할 부실폭탄들을 최소한의 충격으로 최대한 질서있게 정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말'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질서있는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에 대한 확신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태영건설의 질서 있는 처리가 그 출발점이다. 이 작업에서 실패하면 시장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과거 구조조정 시절 난무했던 이른바 구조조정 리스트가 다시 기업을 옥죌 수 있다. "00건설은 괜찮다. 예측한 부분이다. 시스템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말만으로는 더 이상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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