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친절한 총선을 바라며
[서울 말고] 김유빈 |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이사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었다고 특별한 변화는 없지만, 무엇인가 다짐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올 들어 굉장히 사소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다. 짧은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미용실을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것이다. 날 돌보지 않고 업무에 매몰되었을 때 끝없이 소모되는 것을 확인해서다.
광주에서 다짐은 5·18민주묘지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새해의 첫 외부 일정은 5·18민주묘지에서의 시무식이다. 시민사회나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뿐 아니라 정치권과 광주에 적을 둔 다양한 기관들이 오월 영령 참배로 한 해를 시작한다. 다양한 그룹이 모이지만 특별히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유명 정치인들이 그럴 것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티브이에서나 보던 정치인들이 신기해 그들을 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곤 했었다. 총선이 있는 올해 역시 각 정당의 시무식은 일상적으로 민주 묘지에서 이루어졌다. 출마 도전장을 내민 예비 후보들도 참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들은 묘역 앞에서 어떤 다짐을 했을까.
작년 연말 누군가 필자에게 현 정치 상황에 대해 청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물음표만 띄운 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답변을 고민하다 보니 되려 되묻고 싶어진다. 청년이 정치를 물어볼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장이 있었는가, 정치를 일상으로 고민할 수 있게 정치가 현실로 부닥쳐 오는가, 청년이, 곧 ‘내’가 정치를 선택할 기회는 있었는가.
기억하기로 유권자가 된 이후 필자가 지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치는 없었다. 총선을 앞둔 올해 역시 이전의 선거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회의적인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잠깐 광주의 상황을 언급하자면, 광주 8개 선거구에서 현재(2024년 1월4일 기준) 모두 36명의 예비 후보자가 등록을 마쳤는데 더불어민주당 27명, 진보당 7명, 국민의힘 1명, 무소속 1명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수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때 학교 사회 시간에서 간단히 배우는 정치로 현실 정치를 알기란 쉽지 않지만,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갑자기 유권자가 된다. 선거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라도 할 곳이 마땅치 않고 내 삶과 정치가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와 닿지도 않는다. 이미 짜인 복잡한 이해관계와 구조에서 ‘모르는’ 상태로 투표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역적이 되고, 소수정당에 투표하면 사표를 만들었다 비난받는다. 우리의 선택지는 결국 하나에 불과하다.
더하여 특정 계층에만 공유되는 정치 담론이 청년과 공유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과 동시에 디제이(DJ)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디제이 정신은 무엇일까.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등학교에 다니며 통일 포스터를 그렸던 기억이 전부이다. 설명을 통해 전달해 주지 않으면 계승하겠다는 그 정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알 수 없다면 함께할 수 없다.
요즘 정치 환경을 보면 혐오와 비방의 언어로 얼룩진 것을 넘어 물리적 폭력까지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 비난만 하지 마시고 지금 한국 정치가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각각의 견해차는 뭔지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청한다.
자동차가 우선인 도시 광주는 운전자가 보기 쉬운 건물에 크고 시퍼런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다. 현수막 아래를 지나다 보면 이 도시가 시퍼런 색으로 뒤덮여 있는 느낌을 받는데 썩 유쾌하지 않다. ‘광주는 어때요?’ 선거철만 되면 기대 가득 담긴 이 질문이 필자는 너무 부끄럽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다양한 정당, 세대, 성별이 참여하고 또 당선되는 다정하고 친절한 총선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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