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이대로 가면 재정위기"···이민 확대 등 구조개혁 주문
하인스 교수 "부채로 美경쟁력 약화"
에벌리 교수 "베이비붐세대 급속 이탈"
정부 눈덩이 부채·고령화 문제 지적
고금리로 비용증가·투자위축도 우려
AI·바이오·디지털 등 기술혁신 지원
美경제 전반 지속가능성 확보 제안
“부채 문제는 미국 국부의 원천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제임스 하인스 미시간대 교수)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지만 정치적 의지도, 국민들의 지지도 적습니다.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나 피터슨 콘퍼런스보드 수석이코노미스트)
2024 전미경제학회(AEA) 연례 총회에 참석한 경제 석학들이 미국 경제에 대한 구조 개혁을 주문했다. 지난 3~4년간 코로나19 팬데믹, 금리 인상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던 구조적 과제에 대응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석학들은 금융위기, 팬데믹을 겪으며 급증한 정부 부채(고부채)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고령화), 2010년대 이후 저금리 시대가 종료되고 찾아 온 경제 환경 변화(고금리)를 미국 경제의 주요 구조적 과제로 지목했다.
◇美 연방 적자 눈덩이 효과 “이대로는 재정 위기”=미국 정부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 학계의 의견이 모였다. 지난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던 캐런 다이넌 하버드대 교수는 5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2024 전미경제학회에서 “현재 부채는 지속 불가능한 경로에 있다”며 “이자에 눈덩이 효과가 발생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 경제는 재정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정부 부채는 34조 62억 달러(약 4경 4744조 원). 2008년 초 10조 달러 수준이었던 정부 부채는 금융위기와 팬데믹을 거치며 15년 만에 3배로 급증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인 엘런 젠트너는 “금리가 금융위기 이전 평균 수준인 3.2%를 유지한다면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지난해 122.1% 수준에서 2040년 145.6%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채 문제는 결국 국채 금리가 올라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데이나 피터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늘어나는 국채 발행을 과연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 유념해야 한다”며 “중국·일본은 이미 미국 국채 외에도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있다. 부채가 늘수록 신용등급은 떨어져 조달 비용이 더 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고통스럽지만 헬스케어 개편과 세제 개혁, 초당적 부채위원회 설립, 은퇴 연령 상향 등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이비붐 막내가 60대··· Z세대 부담=학자들은 노동인구 감소도 미국 경제의 당면 과제로 지목했다. 피터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65세 이상 인구 대비 25~64세 인구 비율은 1980년 4.2명에서 2020년 3.0을 넘었으며 2040년 2.2명, 2060년에는 2명 이하로 떨어진다”며 “노동인구 감소로 세입은 줄고 복지 지출은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고령화 문제가 재정 적자와도 얽혀 있다는 설명이다.
재무부 경제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낸 재니스 애벌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조기 은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통상 침체가 끝나면 근로자들이 고용 시장에 복귀하지만 이번에는 54세 이상 세대가 돌아오지 않았다”며 “베이비붐 세대가 빠르게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 시대의 종언도 경제의 구조적 변수다. 사이먼 길크리스트 뉴욕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기업들이 변동금리 부채의 이자를 헤징하지 않고 보유할 경우 금리 상승기에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자 비용 증가로 현금 흐름이 악화된 탓이다. 길크리스트 교수는 “지난해 1000개 기업의 보고서 1만 건을 분석한 사례를 보면 미국 기업 대다수가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를 헤징하지 않았다”며 “이것이 앞으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라고 말했다.
◇이민·AI·디지털··· 구조 개혁 보완재=석학들이 생산성 향상을 조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투자 위축 등이 발생하는 데 대응해 생산성을 더욱 높여야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제임스 하인스 교수는 “1990년대 미국 정부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생산성이 폭발하면서 세금이 늘고 세금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를 보면 미국 경제에서 계속되는 혁신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율주행 자동차, 비만 치료제 ‘오젬픽’과 같은 제약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날 잠재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인공지능(AI)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컸다. 타냐 바비냐 컬럼비아대 교수는 모건스탠리나 스타벅스가 AI를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나 공급망 관리에 적용한 사례를 소개하며 “AI를 통해 생산성을 높인 증거는 계속 나오고 있다”며 “미국 상장 기업의 50%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AI에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민을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잇따랐다. 젠트너 이코노미스트는 “Z세대는 처음으로 비백인이 다수인 세대가 됐고 이들의 경제적 영향은 더 커질 것”이라며 “이민은 지속 가능성에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하인스 교수는 “이민을 제한하면 부족한 숙련공을 자본으로 대체해야 해 비용이 늘어난다”며 “이는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요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샌안토니오)=김흥록 특파원 ro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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