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자살률 1위 오명, 개인의 문제 아냐 … 국가적 해결 의지 있어야"
2022년 기준 10만명당 25.2명… OECD 평균 2.4배 달해
"구조 시스템 구축·자살 원인 따른 맞춤형 해법 필수적"
'자살률 1위.'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이 불명예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옥죄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상하게도 불행하다. 각종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이혼율, 노인빈곤율 등 불행을 나타내는 지표는 항상 맨 위쪽에서 거론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 아픈 지수는 바로 '자살률 1위'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2년에도 '자살률 1위'라는 국가적 오명을 벗지 못했다.
통계청의 2022년 사망원인 분석을 살펴보면 고의적 자해(자살)로 사망한 인원은 1만2906명, 10만명당 자살률 25.2명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2018년 26.6명에서 내림 곡선을 보이고 있지만 OECD 국가 평균이 10.6명이라는 사실과 견주면 2.4배에 가깝다. 특히 10~39세까지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라는 점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 자살위기극복특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한지아(45·사진)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자살률 1위라는 얘기는 여러번 했지만, 정말 이것을 바꿔야 하는 것인지를 인식한 리더십이 부재했다"며 "자살을 개인이 다뤄야 할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 우울증 등 정신건강을 드러내고 치료받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도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한 위원장은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재활의학과 교수로, 현재 통합위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자살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 위원장은 "지금까지 자살 문제를 다루는 정부 기구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자살예방'과 관련된 위원회 정도였다. 대통령 직속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자살 문제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말 자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그동안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살을 '개인적 원인'으로 생각하고 사회는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서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는데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치부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지금까지 자살률 1위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이니었나 한다"고 짚었다. 한 위원장은 "WHO(세계보건기구)는 1948년 '건강'을 질병의 부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이라고 정의했다"며 "우리나라는 이제 10~15년 정도 정신건강과 사회적 안정 등을 (드러내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이 그렇게 늦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청소년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는 것에 비해 부모들이 자녀의 정신적 문제를 파악했을 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걸 주저한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개인'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놨던 자살의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려 국가적 차원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자살 결심자 또는 시도자를 구조할 시스템 구축과 자살 원인에 따른 맞춤형 해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 위원장은 "자살 예방 차원의 상담이나 구급은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며 "자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독려할 수 있는 분위를 조성하는 법안, 자살 충격파와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언론보도 지침 등 정책과 기준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올해 1월1일부터 곳곳에 분산돼 있던 자살 관련 상담전화를 '109'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국민통합위와 자살위기극복특위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논의해 '단 한 명의 생명도'(1) '자살이 없도록'(0) '구하자'(9)는 의미를 담아 '109 통합 운영 방안'을 제안했다. 그동안 자살예방 상담 전화번호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리케이션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또, 관계부처에 영상물 등급 분류 고려 사항에 자살뿐 아니라 자해를 추가하는 보완책과 데이터 예측 기반 시스템으로 자살 고위험군을 관리할 수 있는 '자살 예측 모형 개발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109 통합번호가 자살 예방에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며 "사실 통합 시스템이 정착이 잘 되려면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 109 번호 상담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만큼 추가 인력, 추가 인프라 등에 소요되는 예산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신적 질환을 치부로 느끼지 않고 질병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자살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7월부터 자살예방교육이 의무화되지만, 관련 예산은 31억원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한 위원장의 판단이다.
한 위원장은 "물론 이런 정책들이 당장 자살률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지만 자살률을 낮추겠다는 확고한 리더십이 확보됐고, 정신 건강을 국가적인 아젠다로 가져가겠다는 실행 의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의 경우 정부가 주도한 자살예방 대책으로 상당한 수치적 절감 효과를 거뒀다.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과연 자살률 감소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 위원장은 언론보도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이선균 배우의 자살 등 유명인의 자살을 다루는 보도행태를 두고 자살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자극적으로 보도하거나,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표현해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짓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모방자살이 확산하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 위원장은 "자살보도는 해당 인물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 대신 '사망', '자살' 등 중립적 용어를 쓰도록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는 "자살은 젠더·세대·진영을 뛰어넘는 문제이고, 생명은 곧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자살 관련 대책에 사람 중심의 돌봄과 의료를 연계하는 통합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도록 입법을 보완해 '통합'의 모범 사례를 만들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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