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와인 둥절’…지난해 국감서 도대체 무슨 일 있었길래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의 와인클럽 32- 샴페인, 설탕첨가 표기 논란
최근 일반 와인 소비자와 전문가, 수입업계가 모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도 각기 다른 이유로.
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샴페인을 포함한 스파클링 와인을 수입할 때 ‘설탕’이 원재료에 표시돼 있는지를 검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샴페인에 설탕을 첨가했으면 소비자가 이를 알 수 있게 와인 라벨에 명시하라는 취지입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최재형 의원(국민의힘)이 “샴페인 제조과정에서 설탕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원재료명에 설탕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데 따른 후속조치 입니다. 최 의원에 따르면 631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613개 제품이 설탕 첨가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샴페인의 라벨에는 설탕을 얼마나 넣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당도’가 이미 표기돼 있습니다. 샴페인 라벨에 적혀있는 브뤼 나투르(Brut Nature)- 엑스트라 브뤼(Extra-Brut)- 브뤼(Brut)-엑스트라 드라이(Extra-Dry, Extra-Sec)-드라이(Dry, Sec)-세미 드라이(Semi-Dry, Demi Sec)-스위트(Sweet, Doux)가 당도 표기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샴페인에 남아있는 잔류 당분, 즉 잔당(residual sugar)의 양을 의미합니다.
일반 와인에선 드라이하다고 표현하면 당도를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샴페인에선 ‘드라이’라고 표기돼 있으면 상대적으로 당도가 높은 편입니다.
또 브뤼(Brut), 드미섹(Demi-Sec) 등이 당도 표기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들도 이를 포도의 당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샴페인 전문가인 피터 리암은 그의 책 ‘샴페인’에서 “음식에 소금을 넣는 것처럼 샴페인에 설탕을 넣는 것은 당도가 아닌 전체적인 조화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음식을 짜게 하려고 소금을 넣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풍미를 좋게 하려고 소금을 넣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샴페인에 들어간 설탕의 양이 단맛과 정비례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존 샴페인의 산도가 높으면 설탕이 많이 들어가도 단맛이 감춰질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콜라의 경우 산도(pH)가 식초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보통 콜라를 마시고 시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콜라에 설탕(당분)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일반 레드나 화이트 와인에도 설탕을 추가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반 스틸 와인에는 설탕 추가를 아예 금지하는 곳이 많습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수확 때 까지 포도가 덜 익었을 경우 설탕 첨가를 허용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한국을 방문한 유럽의 한 와인업계 관계자는 ‘설탕과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설탕첨가 표기 의무화를 해석했습니다. 그는 “설탕세의 타깃이 된 탄산음료 업계가 스파클링 와인을 전선에 끌어들였다”고 말했습니다.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가 비만과 당뇨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에 따라 영국은 이미 탄산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미국도 주별로 설탕세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타 업계에서는 ‘자율규제’로 설탕첨가 표기가 이뤄지고 있는 반면에 와인업계는 설탕첨가 표기가 자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EU가 강제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겁니다.
국내 식품업계도 이번 식약처의 조치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설탕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과일에 설탕시럽을 입힌 탕후루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건강 저해’를 이유로 탕후루 업체 대표가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포도즙은 1차 발효를 거쳐 포도주가 됩니다. 효모가 포도의 당을 잡아먹고, 알코올과 탄산을 만드는데 1차 발효 때 탄산은 숙성통에서 공기중으로 날아갑니다. 일반 와인입니다. 일반 와인을 병에 넣고 설탕을 추가해 2차 발효를 시킨 게 샴페인입니다. 1차 발효 때와 달리 2차 발효는 병 안에서 이뤄져 탄산이 도망가지 못하고 갇힙니다.
2차 발효를 통해 샴페인은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고 탄산이 생기는데, 설탕 4g/ℓ가 1기압의 탄산을 발생시킵니다. 샴페인의 6기압을 맞추려면 이론상 24g/ℓ의 설탕이 들어가야 합니다. 다만 2차 발효에 넣은 설탕은 발효과정에서 모두 알코올과 탄산으로 바뀌기 때문에 샴페인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품에 남아 있지 않은 성분은 표기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2차 발효를 위해 넣은 설탕은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샴페인 하우스에 따라 고의건 실수건 2차 발효때 잔당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도자주 때는 당과 와인 등을 섞은 ‘리큐어 덱스페디시옹’이라는 액체를 추가하는데 이때 추가된 당분의 양이 샴페인의 최종 당도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때 들어가는 설탕(당분)의 양으로 엑스트라 브뤼, 브뤼 등이 결정됩니다.
소비자의 입맛이 변하면서 도자주의 설탕 첨가량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샴페인도 디저트 와인에서 음식을 먹기 전 마시는 식전주로 위치가 바뀌게 됩니다.
지구 온난화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샹파뉴에서 생산되는 포도도 과거에 비해 ‘신맛’보다는 ‘단맛’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자주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도 점점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EU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12월8일 이후 제조된 와인에만 적용됩니다. 하지만 한국 식약처의 방침은 과거에 이미 제조된 샴페인이라도 1월1일 이후 선적된 와인은 모두 적용대상이란 점에서 혼란이 예상됩니다. 우리가 꼭 EU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지만 과거까지 ‘소급’해 적용할 만큼 급박하고 중차대한 사안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와인 수입업계에선 기존 수입되던 샴페인도 정밀검사를 새롭게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도 반발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알권리’ 차원에서 설탕첨가 표기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내용물이 바뀐 것이 없는데 기존 수입 샴페인까지 다시 검사받아야 하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정밀검사의 실질적인 효용성이 없다는 점에서 지나친 행정력 낭비란 지적도 나옵니다. 그야말로 ‘검사’를 위한 ‘검사’입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샴페인 제조과정에서 추가된 설탕과 포도에서 나온 당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면서도 “원재료가 바뀌면 정밀검사를 다시 받아야한다는 규졍에 따라 원재료에 설탕이 추가표기 되면 검사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와인 수입업계가 볼멘소리를 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의 수입와인 시장은 코로나를 거치면 급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코로나 이전 1인당 0.8병이던 와인 소비량이 2.4병까지 늘었으니까요. 하지만 지난해 약 20~30%정도 시장이 위축되면서 여러 수입사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나마 샴페인을 포함한 스파클링 와인시장은 국내서 탄탄한 성장세를 보였는데 이번 조치로 소비자들이 냉담하게 돌아설까 우려하는 표정입니다.
지난해 달콤했던 샴페인 수입 시장이 ‘드라이’한 새해를 맞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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