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진솔하게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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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면적이 크지는 않지만 지역 사투리가 있고, 그 사투리가 반영하는 정서가 있다.
TV를 보다가 어머니와 같은 지역 출신자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는 세 번은 물어봐야 성의껏 물어본 것이 되고 상대방의 진짜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의사소통을 할 때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상대방이 알 것이라 상정하는 문화와 그렇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상세히 말하는, 나아가 아예 문서로 만들어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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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면적이 크지는 않지만 지역 사투리가 있고, 그 사투리가 반영하는 정서가 있다. TV를 보다가 어머니와 같은 지역 출신자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는 세 번은 물어봐야 성의껏 물어본 것이 되고 상대방의 진짜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50년 넘게 어머니의 자식으로 살아왔지만 그런 주장은 처음 접했고, 마침 반찬거리를 살 일이 있어서 안부 인사 겸 정말 그러한지 알아보려는 장난 섞인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제가 어리굴젓을 사려고 하는데 어머니 것도 살까요?" 처음 질문에 어머니의 답변은 "되었다. 너희 맛있게 먹어라"였다. 재차 질문했더니, "아니 그런 걸 뭐하러 사서 먹니? 먹고 싶으면 담가 먹으면 되지"가 두 번째 답이었다. 답이 묘하게 달라져 세 번째 여쭈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조금 보내라"였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어리굴젓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처음으로 같은 질문을 세 번을 한 것이니 지난 세월 동안 어머니에게 나는 얼마나 섭섭하게 하는 아들이었을까.
의사소통을 할 때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상대방이 알 것이라 상정하는 문화와 그렇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상세히 말하는, 나아가 아예 문서로 만들어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문화가 있다. 이를 각각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라고 부른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사람 사이의 지위와 상태, 표정과 몸짓, 어조와 처지가 이미 메시지를 담고 있고, 이 함축된 메시지가 있기에 어떤 사항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서로의 뜻을 알아주어야 한다. 한 CM송 가사대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의 문화인 셈인데, 고맥락 사회에서 함축된 메시지를 제대로 디코딩하지 않으면 아주 '버릇없고 경우 없는' 사람이 된다. 전통사회라고 흔히 말하는 마을 문화의 산물이다. 옆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 아는 사이에서는 저녁에 아궁이 불도, 음식하는 냄새도 올라오지 않으면 자신의 저녁거리를 나눌 줄 아는 시절에 산 분들은 고맥락 문화에서 산 셈이다. 반면 저맥락 사회는 변화와 다양성이 큰 조건에서 형성된다.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이해손실의 사회적 관계를 맺은 곳에서는 모든 것을 문서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관행과 관습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문화인 셈이다.
두 문화의 우월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기 마련이다. 다만 새해에 고맥락 문화에 속했든 저맥락 세대이든 아니면 둘 사이 어디쯤에 끼였다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 '진솔하게 말하기'를 해보면 어떨까 제안한다. 진솔하게 말하기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타인과 공존 및 번영을 기대하려는 노력이다.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것은 자신의 이기성을 인정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욕망을 인지해 그것을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수용될 형태로 다듬는다는 뜻이다. 타인과의 공존 기대는, 그도 나와 같은 이기성과 욕망을 실현하고픈 주체이며, 동시에 나와 공생 가능한 형식으로 지내려고 할 것이란 기대다. 매번 성공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진솔하게 말하기는 공존과 소통의 진지한 시도다.
[김학철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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