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K라면, 해외시장서 '꼼수' 판매 안된다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4. 1. 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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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의 번데기는 일본, 미국, 유럽 등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고향의 맛'으로 인기가 높았다.

해외 현지에서는 좀처럼 구하기가 힘들어 한국 식품을 파는 한인마트를 가야 살 수 있었다.

한국 소비자가 산화된 와인의 맛을 구분하기 힘든 것처럼 해외 소비자도 산화된 K라면의 맛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라면을 포함한 K푸드가 소수인종을 위한 식품에서 벗어나 주류 시장에서 안착하려면 소비자와 신뢰, 또 유통 채널과 신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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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의 번데기는 일본, 미국, 유럽 등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고향의 맛'으로 인기가 높았다. 해외 현지에서는 좀처럼 구하기가 힘들어 한국 식품을 파는 한인마트를 가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수출·유통하기엔 현지 식품당국의 까다로운 심사를 넘기가 힘든 게 문제였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자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는 법이다. 결국 번데기는 '고양이 사료'로 수출됐다. 지역에 따라 '새 모이'로 수출된 곳도 있다. 현지 식품당국은 한인마트처럼 에스닉 마트(Ethnic Mart)에서 판매된 번데기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건, 고양이나 새의 입으로 들어가건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번데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여러 인종이 함께 사는 사회에선 그 특유의 가치와 식습관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문제로 삼지 않았다는 해석이 옳다.

하지만 판매량이 늘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품도 에스닉 마트를 넘어서 주류 시장 일반 마트의 에스닉 푸드(Ethnic foods) 코너에 진입하게 된다. 주로 '아시안 푸드' 섹션에 진열되는데 이때부터는 현지 식품당국도 관심을 갖고 소비와 유통 과정을 지켜본다. 일반 마트에선 특정 부류의 사람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번데기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 정식 절차를 밟아 사료가 아닌 '식품'으로 수출되고 있다.

굳이 과거 '번데기' 수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얼마 전 수출된 한국 라면의 소비기한에 대한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2022년 초·중반에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 컵라면이 소비기한을 2024년 5월로 찍어 현지 마트에서 판매된다는 내용이었다. 현지 판매업체의 브랜드를 달고 있어 해당 라면 생산업체에 문의해 보니 내용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수출 라면의 경우 통상 제조일로부터 1년까지는 생산업체의 책임, 그 이후는 현지 유통업체의 책임으로 한다"고 답변했다.

한국 시장에서 컵라면의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6개월, 소비기한은 8개월 정도다. 과거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한국에선 6개월인 K라면의 유통기한이 왜 중국 시장에선 1년이냐고 문제 삼았다. 당시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라고 넘겼다. 올해부터 유통기한이 없어지고 소비기한이 의무시행에 들어갔다. '이중 기준'을 둘 이유도 사라졌다.

정상적인 소비기한이 지난 라면은 냄새, 맛이 다르고 기름이 산화돼 건강에도 안 좋다. 특히 K라면을 처음 접한 해외 소비자에게 나쁜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한국 소비자가 산화된 와인의 맛을 구분하기 힘든 것처럼 해외 소비자도 산화된 K라면의 맛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상한 걸 알면 안 먹거나 반품하면 된다. 모르고 먹으면 문제가 된다. 수출품이라고 해서 유통·소비 기한을 엿가락처럼 늘리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소비자와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K라면은 '꼼수' 수출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수출된 식품의 소비기한을 마음대로 늘리는 것은 K라면, 나아가서는 K푸드 전체의 신뢰에 금이 가는 행위다. 라면을 포함한 K푸드가 소수인종을 위한 식품에서 벗어나 주류 시장에서 안착하려면 소비자와 신뢰, 또 유통 채널과 신뢰가 중요하다.

[김기정 (컨슈머) 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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