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도 아닌데…그 많던 개고기집은 왜 다 사라졌나 [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4. 1. 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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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人-9] 굿바이 개고기
1995년부터 개고기를 판매 중인 보신탕집의 수육
이번 글은 개고기에 대한 찬반 논란을 다루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음식이었던 개고기가 앞으로는 음식의 카테고리에서 영원히 지워질 수 있는 전대미문의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기에 끄적여봅니다.

서울 강남에서 1995년부터 개고기를 내놓고 있는 보신탕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최근 개 식용 금지 특별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법제화 가능성이 커지자 몇 년째 입도 대지 않았던 개고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강남역에서 걸어서 10분쯤 소요되는 곳에 있는 가게는 한산했다. 주중 점심이라 직장인들이 꽤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업 시작 시각인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식사하는 동안 손님은 우리 팀을 빼고 3팀밖에 오지 않았다. 3팀 모두 50~70대 남성들이었다. 저녁에는 손님이 좀 더 있다고는 하나 확실히 예전만큼 개고기를 찾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수육 냄비를 식탁 위 가스버너에 올려놓고 있는 사장님께 물었다.

“앞으로 영업 계속하세요?”

그러자 이 사장님은 가스버너 불을 켜면서 담담히 말했다.

“아직 3년이나 남았어요. 2027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국회가 논의중인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은 관련업계의 폐업기간을 감안해 관련법 시행후 3년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오는 2027년부터 단속을 추진하기로 했다.

나도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여름철이 되면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즐겼고 사회생활 초년병 시절까지도 회사 인근 유명 보신탕집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7~8년 동안은 생각조차 안 했던 거 같다. ‘누칼협(누가 먹지 말라고 칼 들고 협박)’도 아닌데 개고기에 대한 내 식욕은 사라졌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못 먹게 한다고 하니 다시 호기심이 발동했다.

부위 마다 맛이 다르겠지만 이날 먹은 개고기는 갈비도 있었고 마블링처럼 기름이 고기 사이사이에 배어 부드러웠다. 개인적으로 소나 돼지와 달리 개고기 수육은 겉면이 더 반질반질하고 식감이 퍽퍽하지 않으며 말랑말랑한 느낌이다. 특히 보신탕집 소스는 개고기에 감칠맛을 더해 입맛을 더 돋운다.

보신탕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제소스
한 때 ‘돈우계’ 다음이었는데…사라져 가는 개고기
강북 사는 사람이 강남까지 가서 보신탕을 먹은 건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보신탕집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 변경을 해서다. 마포와 서대문, 충무로에서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보신탕집의 자취는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개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이 줄어드는 추세는 숫자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 1998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개고기 판매 식당은 총 6484개소였으며 하루 평균 25t, 연간 8428t이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수술환자들이 보양음식으로 즐겨 먹었던 개소주는 연간 9만3600여t이 소비되어 전체 개고기 소비량은 약 10만t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당시 전체 육류 소비 1위인 돼지고기(70만t), 2위인 쇠고기(36만t), 3위인 닭고기(28만t)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러나 개 식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젊은 세대의 개고기 선호가 현격히 떨어지면서 식당 수는 급감했다.

지난 2021년말 ‘개 식용 문제 논의 위원회’를 출범시킨 농림축산식품부가 2022년 2월 식용 목적 사육·유통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고기 판매 식당은 총 1666개로 약 20여년만에 74.3%가 줄었다.

이 때 당시 국민 10명 중 8명은 개고기를 먹지 않고 앞으로도 먹을 의향이 없다고 밝혀 사실상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쇠락하고 있었다. 위원회가 전국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85.5%가 현재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답변했고, 80.7%는 앞으로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당시 전국 개 농장 1156곳에서 사육되는 개는 52만여마리였으며 연간 38만8000마리가 소비되고 있었다.

46년째 법 망의 ‘회색지대’
1975년 8월 개정해 개고기를 축산물로 규정한 축산물가공처리법시행규칙
개고기를 축산물로 규정한 축산물가공처리법시행규칙 제2조가 빠진 1978년 시행규칙
여기에서 개고기 식용 찬반 논거를 열거하면 한없이 길어지니 과감히 생략하려 한다.

개고기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고 오래됐다는 건 여러 기록에서 나온다. 또한 미국, 유럽에서도 먹었었고, ‘네 발 달린 거라면 식탁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에서는 개고기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다. 개고기가 지금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음식으로 여겨지는만큼 각자 소신대로 판단하면 될 일이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고기에 대한 법적인 ‘회색지대’이다. 국내에서 개고기 찬반론자들이 서로 “합법이다”, “불법이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법적으로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 해방 후 개고기가 유통되어 오다가 1975년 정부는 농수산부령인 ‘축산물 가공처리법(현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 제2조에 수축(축산물)의 범위로 개를 포함했다.

그러나 동물단체와 국제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고 1978년 6월 제2조를 없애 개고기가 축산물 가공처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식용목적의 개 농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축산법에는 개를 가축으로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개 식용은 이 때부터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개를 가축으로 규정한 축산법 시행령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개 식용 금지 이슈화와 종사자 생계 대책 논란은 또 다른 문제이니 별론으로 둔다. 중요한건 이번 이야말로 개고기에 대한 법적인 회색지대를 없애야 할 시점이란 것이다. 여야가 개 식용을 한 마음으로 반대한다고는 하나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님들께서 과연 열심히 일을 하실지…. 1978년 ‘축산물 가공처리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난 개가 과연 음식이라는 울타리를 46년만에 벗어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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