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나누고, 기억은 간직한다는 마음으로 춤추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1628번째 수요 시위가 열린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품은 작은 여성이 시민 앞에 섰다. 가녀린 손짓, 날랜 발짓, 온몸과 표정이 허공을 갈랐다. 하얀 입김, 거친 숨 말고는 입에서 나온 게 없는 데도 모든 이들은 그의 몸짓에 동감했고, 감동했다.
춤꾼 오세란(64)이다. 충북 청주의 ‘민족춤패 너울’에선 안무가, 창작 연희단체 ‘예술공장 두레’에선 이사장이다. 그는 틈틈이 상경해 수요 시위 현장에서 몸과 마음을 나눈다.
“아픔은 나누고, 기억은 간직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찾곤 해요. 운명처럼…” 실제 그는 2018년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담은 극 ‘끝나지 않은 노래-나비의 꿈’에서 감독·안무·배우로 혼신을 다하기도 했다.
그는 수요 시위뿐 아니라 전국의 뜻 있는 집회·시위를 가리지 않는 ‘거리의 춤꾼’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 총격에 희생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이역만리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희생된 베트남 민간인의 넋도 달랬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시대의 아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지요. 저는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니, 몸이 시키는대로 어디든 달려가 함께 하려 합니다.”
1984년부터 춤·광대 인생 40년
수요시위, 오송참사, 베트남 등
집회·시위 현장에선 ‘거리의 춤꾼’
‘위안부’ 춤극에선 감독·안무·배우
“힘닿는 한 무대서 시민 만나고파”
‘예술의 진실과 문화의 정의 펼쳐’
충북시민단체가 주는 동범상 받아
그는 4일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주는 21회 동범상(시민사회발전 부문)을 받았다. 이날 한용진(52) 충북민예총 사무처장도 시민운동가 부문 동범상을 받았다. 둘은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함께해온 동지다. 둘의 상패엔 “예술의 진실과 문화의 정의를 펼친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새겨졌다.
충북 시민운동의 선구자 동범 최병준(1932~2001) 선생을 기려 제정한 동범상은 시민운동을 하는 이에겐 무겁고, 벅찬 상이다. 선생은 청주여고 교사를 지내다, 시민운동에 헌신해 충북예총·청주시민회·청주경실련 등의 뿌리가 됐다.
오 이사장은 21차례 역대 동범상 수상자 가운데 최고령이지만 누구 못지않은 젊은 활동가다. 올해만 해도 세월호 추모제, 5·18민주항쟁과 6·10항쟁 문화제, 오송 지하차도 참사 49재와 추모 문화제 등 무대에 섰다. 늘 단단한 그이지만 오송 참사 문화제에선 유족 등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세월호, 이태원, 오송 등 나라와 어른들이 아이와 시민을 지켜주지 못한 참사가 이어지는 현실이 너무 서글퍼요. 아이들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요.”
그는 바지런한 춤꾼이자 광대다. 작은 몸으로 전국의 크고 작은 무대를 누볐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18년 겨울 무대와 시민 곁을 홀연히 떠났다. 4년이 훌쩍 지난 2022년 5월 다시 돌아왔다. “많이 아팠어요. 하지만 할 일이 남아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의 춤·광대 인생은 40년을 거스러오른다. 1984년 11월 지역 춤꾼과 꾸린 우리춤연구회가 출발이다. 1990년엔 극단 열림터·풍물굿패 씨알누리·춤패 너울 등과 예술공간 두레마을을 만들었다. 이후 서로 홀로서기를 했고, 그는 너울과 두레를 지켰다.
두레는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가 두레이고, 두레가 그다. 두레에선 춤꾼이면서 가볍고 무거운 역을 가리지 않는 배우이기도하다. 지난달 청주 문화공간 새벽에서 선보인 ‘산막집 돌각시’에선 감초 돌각시 역할로 박수를 받았다.
두레는 코로나,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위기로 공연이 급감한 때를 빼고 해마다 90~100여 차례 관객을 찾는다. 지금껏 어림잡아 1700여 차례 공연했다.
특히 2005년부터 해마다 여름 밤에 여는 ‘농촌 우수 마당극 잔치’는 두레의 히트 상품이다. 두레가 자리 잡은 청주시 내수읍 등 농촌 들녘을 무대로 사흘 동안 펼쳐지는 잔치는 그야말로 보고,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지난해 8월엔 서울 극단 아리랑, 부산 극단 자갈치, 경남 진주 풍류춤연구소, 전남 목포 극단 갯돌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극단·배우가 판을 벌였다. 더욱이 두레 배우 등이 거동이 불편한 주변 어르신 등을 버스로 모셔와 뜻을 더했다.
오 이사장은 “마당극 잔치는 문화·예술·공연에 목마른 농촌 주민 등을 위해 마련한 잔치인데 오히려 배우 등이 힘과 기를 받는다”며 “많이 아팠기에 덤으로 사는 여생, 여전히 무대는 그리운 곳이다. 힘이 닿는 한 무대에서 시민·관객을 두루두루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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