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김대건 성상 … 바티칸 감동 오롯이
도포 입고 갓 쓴 온화한 인상
바티칸 성상 58㎝로 줄여 전시
14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 만들어진 지 550년 정도 됐다. 그때부터 비워져 있던 자리다. 마치 처음부터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위한 공간이었던 듯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한진섭 작가(사진)는 지난해 9월 바티칸 시국의 세계 최대 규모의 가톨릭 대성당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한 김대건 신부(1821~1846) 성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2년 전 제작을 의뢰받아 높이 3.77m 규모의 성상을 조각하고 대성전에 설치하기까지 모든 순간이 신이 이끈 기적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19세기 조선의 김대건 신부는 1846년 당시 25세의 나이로 순교한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다. 김대건 신부 성상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전신상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의 4.5m 높이 아치형 벽감(壁龕·벽면을 안으로 파서 만든 공간) 안에 설치됐다.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닌 성당인 대성전(바실리카)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한진섭 작가의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가 오는 1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린다. 10년 만에 개최되는 이번 개인전에서 한 작가는 김대건 신부 성상의 작업 과정을 실제 바티칸 교황청에 제출했던 모형과 관련 사진·영상, 기록 등을 통해 선보였다. 이와 함께 대성전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을 높이 58㎝ 크기로 축소해 조각한 작품과 십자가상, 성가정상 등 가톨릭 주제의 조각 작품 20점이 전시됐다.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양팔을 벌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김대건 신부의 모습은 모든 것을 포용하듯 인자한 모습이다. 여백의 미를 살린 단순한 형태는 단아하고 갓과 도포의 곡선은 부드럽다. 성상 아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라고 한글로 적힌 명문 글씨도 한 작가가 성상에 어울리도록 직접 디자인했다.
그는 이번 작업의 기념비적 의미를 잘 알기에 부담이 더 컸다고 했다. 그 무게만큼 더 심혈을 기울였다. 작업에 적합한 돌을 구하는 데만 5개월. '비앙코 카라라'라는 대리석의 고장인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 곳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작품보다 큰 높이 4m, 폭 2m 이상의 거대한 돌이 필요했다. 한 작가는 "충분히 크면서도 깨짐과 무늬가 없고 따뜻한 느낌의 색감과 내구성까지 갖춰야 했는데 넓은 평야에서 기적처럼 꼭 맞는 돌을 찾았다"며 "미켈란젤로가 '피에타' 조각상에 사용한 돌보다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트라산타에 머물면서 8개월에 걸쳐 성상을 완성했다. 한 작가는 "김대건 신부의 담대하면서도 겸손하고 포용력을 가진 얼굴을 표현해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제대로 된 사진이나 초상화가 없었고, 워낙 작품의 크기가 크다 보니 바짝 눈앞에서는 그런 얼굴로 보였는데 막상 밑에 내려와서 보면 아니고 하루에도 수백 번 사다리를 오르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는 유흥식 대주교 추기경이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추진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를 흔쾌히 허락하며 성사됐다. 한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10년간 유학한 것도, 가톨릭 신자가 된 것도,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정하상 바오로 성상을 제작하며 사실적인 조각을 연습한 것도 김대건 신부 성상을 위한 훈련이었던 것만 같다"고 말했다. 작업을 소개하면서도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다. 모든 과정이 신의 계획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종교 시리즈 작품이 총망라됐다. '십자가-은총의 빛' '성가정-행복하여라' '성모자-한마음'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십자가 시리즈는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작가의 시대별 표현 변화가 눈에 띈다. 바티칸 대성전에 설치된 성상을 약 6분의 1 높이로 만든 조각 작품 '김대건 신부님'(2023)은 이번 전시를 위해 따로 작업한 것이다. 재료도 같은 비앙코 카라라를 썼다. 한 작가는 "작품을 대량 생산해 상품화할 계획은 아직까지는 없다"며 "혹시 나중에 제안이 오더라도 제가 수익을 남기는 형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작업으로 한 작가는 정교한 사실주의 조각으로 작가로서의 지평을 한층 더 넓히게 됐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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