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를 놔둬선 안되는 이유 [편집인의 원픽]
최근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범죄연구소’는 이씨를 협박해 500만원을 받은 협의로 구속된 A씨 이름, 나이, 출생지 등을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이 채널은 지난해에도 부산 돌려치기 사건의 가해자, 강남 롤스로이스 사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조회수=돈’인 유튜브 생태계를 감안하면 ‘공분’을 명분 삼아 사적 이익을 추구한 행위나 다름 없다. ‘“너의 얼굴을 공개하겠다” 사법 불신이 낳은 무차별 신상폭로’(1월5일자·박유빈 기자) 기사는 카라큘라 사례를 통해 끊이지 않는 ‘사적 제재’ 의 문제를 짚었다. 개인 신상이 무차별적으로 유통이 가능한 인터넷, 소셜미디어 시대에 ‘사적 제재’는 분노·혐오의 악순환을 낳고 공권력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100만명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에서 유튜브 운영자는 이번 사건 핵심이 이씨 마약 투약 의혹이 아니라 ‘공갈협박’이라면서 A씨 신상과 관련 의혹을 주장했다. 이런 식의 사적 제재는 2020년 운영된 ‘디지털 교도소’가 대표적이다. 성범죄 및 아동학대 등 강력사건 범죄자 신상을 공개했다가 관련 없는 사람들도 포함돼 결국 문을 닫았고, 사이트 운영자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전세자금을 떼먹는 악성 임대인 신상을 공개한 ‘나쁜 집주인’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지난 4일 이혼 후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 파더스’ 운영자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건 사적 제재가 용인돼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미지급자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해 의무 이행을 강제하려는 취지로,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했다.
여상원 변호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신상공개가 공개된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도 명예훼손죄는 성립한다”며 “정보가 공개된 이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 개인정보보법에도 저촉된다”고 했다. 경찰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 등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타인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는 일체 불법이다. 사적 제재는 엉뚱한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최근 일부 네티즌이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학부모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했는데 가해자 학부모와 같은 김밥집을 운영한 다른 가맹점주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지난해는 ‘더 글로리’ ‘모범택시’ ‘국민사형투표’ ‘비질란테’ 등 사적 보복을 소재로 한 컨텐츠가 유독 많았다. 이들 드라마는 모두 화제가 될 정도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비됐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들을 상대로 집요하고 치밀하게 보복을 하는 과정을 그린 ‘더 글로리’는 “멋지다, 연진아!’와 같은 유행어를 낳았다. 공개 투표를 통해 악질범들을 사적으로 처단하는, 그야말로 ‘사적 제재’의 전형을 보여준 ‘국민사형투표’는 마지막회에 이런 자막이 흘렀다. “무죄의 악마들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시청자들이 이런 류의 드라마에 호응하는 것은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카라큘라의 고 이선균 협박범 신상 공개에 대해 네티즌 반응은 어떤지.
“카라큘라를 응원하고 협박범을 욕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카라큘라가 협박 피의자 관련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다. ‘이선균 죽음이 안타까운데 이제라도 카라큘라가 피의자를 공개하고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고 다행이다’ 이런 댓글이 많다.”
-사적 제재가 불법이고 실제 처벌을 받는 사례가 나오는데도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선고가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피해 정도에 비해 가해자 처벌 수준이 너무 낮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사법 불신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이들은 각기 의도가 있다. 이씨 협박 피의자를 공개한 카라큘라 같은 유튜버는 일종의 정의감을 내세우지만 구독자 수 증가와 채널 인기 상승도 분명히 노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재에 응한 변호사들도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오를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에서 100% 선의와 정의를 믿을 수는 없다”며 사적 제재를 우려했다.”
-사적 제재 해악을 막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실시간으로 인터넷상에서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공익적이라고 판단할 것인지, 공개할 정보와 그럴 가치가 없는 정보를 판단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이다. 이씨 협박 피의자 같은 사인의 신상이 공개됐을 때 공익적 가치를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할 지, 문제 소지가 있는 영상을 공개했을 경우 특정 플랫폼에 어떻게 책임을 물을 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런 논의가 없다면 유튜브가 사실상 동영상 플랫폼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이런 류의 콘텐츠는 계속해서 유통될 것이다.”
“너의 얼굴을 공개하겠다”… 사법불신이 낳은 무차별 신상폭로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104515223
양육비 미지급자 공개 ‘배드파더스’ 유죄 확정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104515210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발열·오한·근육통' 감기 아니었네… 일주일만에 459명 당한 '이 병' 확산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