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군사적 긴장 고조…서해5도 주민들 “심장 철렁, 대피 방법도 없어”

전지현 기자 2024. 1. 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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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북한의 서해 해상 완충구역 해안포 사격으로 서해 북단 연평도 주민들이 대피소로 대피해 있다. 옹진군 제공/ 연합뉴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해안포 사격을 한 지난 5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나고 자란 김영식씨(72)는 낮 12시쯤 “군부대에서 포 사격 연습을 할 예정이니 오후 3시까지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마을 안내 방송을 들었다. 2018년 9·19 군사합의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때 육지로 피난했던 김씨는 “또 시작됐구나. 보통 일이 아니구나”하는 마음에 바삐 대피소로 갈 채비를 했다. 집 문서와 통장, 생필품과 옷가지를 보따리째 챙겼다. 2010년 피난 때 아무것도 못 챙기고 맨몸으로 대피했다가 크게 고생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대피소로 이동한 후에야 북한이 백령도 북방 장산곶 일대와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200여발의 해안포 사격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을 겪은 주민들은 서로 모여 앉아 놀란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이튿날인 6일에도 북한은 연평도 북서방에서 60여발 이상의 해안포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김씨는 7일 통화에서 “10년이 넘어 겨우 심장 졸이지 않고 살게 됐는데 포사격에 놀라 대피하던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며 한숨지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안포 사격을 실시한 5일 연평도에서 우리 군 K9 자주포가 해상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연일 북한의 포격 소식을 들은 연평도·백령도 등 서해5도 주민(연평·백령·대청·소청·우도)들은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섬 밖으로 대피할 방편도 마땅치 않다”며 정부에 주민 안전 확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의 9·19 합의 일부 효력 정지 결정이 북한에 빌미를 줬다는 반응도 일각에서 나왔다.

13년째 연평도에 거주 중인 김기호씨(61)는 지난 5일 대피소로 피하지 않았다. 대피 소식이 알려진 건 수산업에 종사하는 그가 박스를 포장할 때였다. 김씨는 “생업이 바쁜데 어디 대피할 시간이 있겠냐”고 했다. 김씨는 “우리 군의 대응사격 훈련 소리가 워낙 크더라”며 “한 30분 동안 쾅, 쾅 거리는데 이러다 무슨 일 나는 거 아닌가 싶어 긴장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이 쏜 포격량의 두 배 이상인 400발을 대응사격한 우리 군 결정에 “주민 목숨을 담보로 그렇게까지 쏴댈 필요가 있었나”라며 “북한이 아닌 우리 해상에 쏘는 것인 줄은 알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6일 오후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에서 해병대원들이 구리동해변 출입구를 닫고 있다. 연합뉴스

연평도 주민들은 사흘째인 7일에도 포 사격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날 오후 4시43분 옹진군은 연평면 주민들에게 “북한 측(에서) 현재 포성 청취되고 있습니다. 연평부대에서 대응 중이니 주민께서는 야외활동에 주의 당부드립니다”라는 재난문자를 보냈다. 주민들은 각자의 집에서 우리 군의 포 사격 소리를 들으며 대피 방송이 나올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연평도 주민 단춘하씨(55)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생일(1월8일)을 앞두고 도발하는 게 아니냐는 기사를 봤다”며 “내일까지 시끄러우려나 싶다”고 했다. 단씨는 포 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이 떠올라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상생활을 하며 별 일 없겠지 싶으면서도 불안하다”고 했다.

주민들은 북한의 도발, 이어지는 우리 군의 대응으로 일상이 과거로 돌아갈까 걱정이다.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 나고 자란 장태헌 백령도 주민자치회장(70)은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파기될 때부터 불안했었다”며 “역시나 이런 일이 바로 나타나니 또 생활이 불편해지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연평도에 사는 박태원 서해5도 평화운동본부 대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지속적으로 도발 형식의 포격전이 벌어질 텐데 정부에 대비책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여객선·어선 통제가 강화돼 주민들의 정주 여건이 더 악화할 것”이라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생업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대피소를 찾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 북한 연이은 해안포 사격…인천시, ‘연평주민 보호 대책회의’ 소집
     https://www.khan.co.kr/politics/defense-diplomacy/article/202401071318011


☞ 불안이 일상인 연평도 주민들 “교전 때 피할 수나 있겠나”
     https://m.khan.co.kr/politics/north-korea/article/202311280600015#c2b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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