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갓!" 깔딱고개 아직 2시간 더 가야해
아침부터 난관이다. 술을 잔뜩 마신 것마냥 빙글빙글 돈다. 고소 증세가 갈수록 심해진다. 이럴 땐 누우면 머리가 더 아파서 상체는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게 진짜 미친다. 머리는 아프고 몸은 피곤한데 앉아서 자야 한다는 게 미칠 지경이다.
고소 적응을 위해 남벽 베이스캠프인 4,100m까지 산행에 나섰다. 해발 3,500m에서 호선이형의 컨디션 악화로 잠시 운행을 멈추었다. 기다려도 괜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대장이 남아 호선이형의 상태를 체크하기로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출발했다.
"베이스캠프까지 가면 너무 오래 걸려. 오후 4시 30분까지만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야해."
호선이형과 대장이 있는 콘프렌시아로 돌아와야 하기에, 한정된 시간 동안만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걸었다. 기빈이형이 가장 빨랐다.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수지와 나는 베이스캠프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실루엣이라도 보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걸었다.
우리 원정대가 정상으로 가는 루트는 아콩카과 북벽 루트다. 오늘 고도적응을 위해 가는 곳은, 아콩카과 남벽이다. 남벽 앞의 베이스캠프다. 세계 3대 거벽으로, 밑에서 꼭 실물을 보고 싶었다. 그래도 며칠 전 3,600m까지 고도적응을 한 덕분인지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오후 4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점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저 언덕만 넘어가면 베이스캠프가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며 서둘러 올랐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포토 스팟(기념사진 명소)이라는 표지판이 멀리 보인다. 저 표지판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기대에 부풀어 언덕에 올랐다. 고도를 확인하니 4,080m였다.
남벽 베이스캠프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콩카과 남벽을 정면에서 보고 왔다! 눈이 가득차는 거대한 벽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아쉽지만 우리 원정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혹시나 앞서간 기빈이형이 내려올까 싶어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아서 먼저 발길을 돌렸다. 먼저 출발했다는 표시를 남기기 위해 바닥에 돌을 모아 '기빈'이라는 글씨를 만들었다.
돌아가는 길, 고소 증세가 번졌다. 머리가 깨질듯 아프고 어지러웠다. 힘이 빠져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생각이 멈추는 것 같아서 왔던 길도 못 알아봤다. 먼저 가던 수지가 "다왔다!" 라고 소리친다. 조현세 대장과 호선이형이 보인다.
기빈이형까지 하산하여, 저녁 7시 30분에 모든 대원이 콘프렌시아에 모였다. 메디컬 체크가 6시 30분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너무 늦었다. 내일은 우리의 베이스캠프인 '플라자 데 뮬라스(4,300m)'로 가야한다. 출발 전엔 꼭 메디컬 체크를 받아야 한다. 조건에 부합되지 못하면 베이스캠프로 올라가지 못한다. 다행히 메디컬 체크를 하는 곳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저녁을 먹고 다시 오라는 말에 저녁을 먼저 먹으러 갔다.
몸은 피곤하지만 대원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떠들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녁을 먹은 후 메디컬 체크를 받으러 갔다. 오늘 산행에서 조현세 대장과 호선이 형이 우리를 기다리는 동안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피부에 약간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
현지 메디컬 체크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앉자마자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받는다. "I am good." 머리는 아픈지, 더 아픈 데는 없는지 묻는다. 현세 대장이 번역을 도와주고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열심히 대답했다. 산소 포화도, 혈압까지 측정하고 통과를 받아냈다. 산행에서 머리 아픈 게 마음에 걸렸는데 다행히 산소 포화도가 높게 나와 안심이다.
12월 27일,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18km를 가야한다. 출발 8시 30분, 도착은 19시로 예상했다. 협곡 사이 모래 바닥의 사람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돌과 자갈, 모래가 가득했다. 지루하고 힘든 길이 될 것이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했다. 발이 모래에 빠져 굉장히 피곤했다. 10시간 넘는 산행이라 땡볕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날이 흐리다.
모든 것이 신기해서 "우와"하면서 고개를 돌리기 바빴지만 점점 내 발끝만 보면서 걸었다. '이 길이 언제끝나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잡생각이 많아지면 산소를 더 많이 써서 머리가 더 아플까봐 그냥 머리를 비우고 산행했다.
아무리 걸어도 캠프가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까지 4km, 3km, 2km 조금씩 거리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 멀리 절벽 위에 무언가 보였다. 코딱지만하게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조벽래 선배가 손 흔들고 있었다. 고소증세로 힘들어하던 호선이형이 마중나오신 벽래 선배를 보고 순간 눈물을 터뜨렸다. 우리는 호선이형이 운다며 놀렸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다들 선배를 보고 울컥했다고 했다. 선배님이 마중 나오며 들고 온 과일주스를 마셨을 때의 기쁨이 잊히지 않는다.
벽래 선배가 마중 나온 곳에서 가파른 언덕을 2시간 더 치고 올라야 했다. 선배는 "오던 길보다 여기가 제일 힘들거다"라고 말했다. 선배를 만났을 땐 바로 앞인 줄 알았는데 듣는 순간 "오 마이 갓!"이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잡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멀리 보이는 베이스캠프까지 천천히 부지런히 걸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캠프에 다가갈수록 OB팀 선배들이 한 분 한 분 마중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눈은 즐거운 산행이었지만 중간중간 힘들 때마다 찾아오는 자책 때문에 그리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고생했다. 반갑다"라고 따뜻한 말로 맞아주는 선배님들 덕분에 힘들었던 마음을 싹 털어버리고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동아대산악회 성기진 회장께서 맥주와 탄산음료를 사주며 "5일만 견뎌내면 평생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역대급으로 힘든 날이었지만 견뎌내서 얻은 즐거움이 있기에 오래 기억될 날이다.오랜만에 완전체가 되니 쉴 새 없이 근황 토크를 나누었다. OB선배들은 우리가 없는 동안 무사히 캠프3까지 다녀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머리에 두통이 시작되었다. 밑에서 와는 다른 두통이라 밤새 많이 뒤척였다. 베이스캠프에서도 이렇게 힘든데 산 위쪽 캠프에서는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앞섰다.
12월 28일, 문명에서 멀어지니 우리끼리의 사소한 것들이 즐거움이 된다. 기빈이형이 "신데렐라가 잠을 잘 못 자면 모짜렐라"라는 이상한 개그도 재미있어, 자다가도 생각나 피식피식한다. 누구 한 명 물길 건너다 발이 빠지면 종일 놀림감이다.
여기서 제일 즐거운 시간은 다 같이 텐트에 둘러앉아 '달무티'라는 카드게임을 하는 시간이다. 꼴찌 하는 사람이 설거지도 하고 물도 뜨고 라면도 끓이는 내기를 하면서 스릴을 즐긴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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