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빌런’은 누구일까

이승준 기자 2024. 1. 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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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오국상 국방부 장관. 배우 김의성이 연기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채널 갈무리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오픈데스크팀장

1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 개봉 초기 온라인에 올라온 관람 후기를 보면, 관객들이 꼽는 영화 속 ‘빌런’(악당)은 전두환씨를 모델로 한 ‘전두광’보다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오국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터져 나오는 ‘답답하고 속 터진다’ 반응의 중심에 오국상이 있었다.

영화에서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모델로 한 오국상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소리에 놀라 달아났다가 신군부 쿠데타를 진압하려던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에게 공격 중단과 직위 해제 명령을 내려 반란군 승리에 일조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는 1979년 12월12일 저녁 7시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벌어진 총격전 소리에 놀라 이곳저곳으로 도망치며 몸을 숨겼고, 반란군에 맞서려던 군인들을 집요하게 막아섰다. 전방 부대까지 동원하는 반란군의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권한을 가졌지만 행사하지 않았다. 병장(국방부 헌병대 정선엽 병장)이 반란군에 맞서 싸우는데도 육군본부에서 우왕좌왕하다 도망치거나 사로잡히는 ‘별’들도 오국상만큼 분노를 일으킨다. 영화는 이들의 행태를 부각해 실제 역사에서 반란군에 맞섰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육군 헌병감, 특전사 김오랑 중령, 정선엽 병장을 돋보이게 한다.

1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중장년뿐만 아니라 20·30대의 눈길도 끄는 한국방송(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에서도 고려를 침략한 거란 장수들보다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기 바쁜 고려 장수들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드라마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전에도 강대국 거란에 맞서 싸운 고려와,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백성들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장수들이 성을 버리고 도주하는 행위는 수많은 고려인이 거란군의 포로가 돼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뜻한다. 거란 40만 대군에 맞서 손에 피딱지가 앉을 때까지 활시위를 당기며 흥화진(평안북도 의주군 추정)을 지키고 백성을 구한 고려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의 모습은 도망친 장수들과 뚜렷이 대비된다. 자연스레 오국상이나 도망친 고려 장수들이 정선엽 병장이나 양규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면 쿠데타를 막고, 고려 백성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서울의 봄과 고려거란전쟁 속 인물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창작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 대중들의 무의식이 자연스레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윤리에 따라 원칙과 소신에 기반해 해야 할 일을 ‘평범하고 당연하게’ 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두 작품의 인기 뒤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을 갖고 있더라도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유불리나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 숨진 채아무개 상병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도 그러한 공동체 구성원 중 하나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에게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조사했고 그 결과를 경찰에 넘겼을 뿐이다. 임 사단장이 성과를 내기 위해 안전 지침 등 원칙에 소홀했던 정황이 계속 드러나고 있지만, 오히려 박 대령에게 돌아온 건 ‘항명’이라는 혐의와 피의자 신분이다. 서울의 봄과 고려거란전쟁에서 신군부와 거란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 이후 온갖 고초를 겪는 것처럼 대세나 ‘윗선’의 의중을 살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쿠데타 세력과 맞섰던 이들이 이후 삶이 평탄치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웠지만, 그보다 서울의 봄 속 오국상 같은 이들이 실제 현실에서 승승장구하고 평탄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마주한 순간 더 씁쓸했다. 2024년에도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돼야 할까.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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