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복수’ ‘경멸’이란 괴물을 키워가고 있는 우리 사회 [배정원의 핫한 시대]
(시사저널=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지난 연말 우리는 '이선균'이라는 한 사람을 잃었다. 아니 잃었다기보다 우리가 그를 사지로 몰았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경찰과 언론과 대중이 합작해 만들어낸, 결국 우리 모두가 공범인 비극이었다. 그의 변호인이 요청했다는 비공개 소환을 경찰로부터 거부당한 후 세 번째 공개 소환돼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다시 서고, 무례한 질문 앞에 섰을 때 그의 복잡한 얼굴 표정을 보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던 그가 얼마나 깊은 자괴감과 자신의 무력함에 비참함을 느꼈을지, 자존감을 얼마나 훼손당했는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故) 이선균씨는 마약 혐의로 내사를 받던 중 소변검사·체모검사 등 수차례의 과학적인 채증에도 물증이 나오지 않자 결국 '개인의 부도덕' '일탈' 등 도덕적 혐의로 몰려 '자신의 인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경찰과 언론, 대중이 합세한 여론재판의 희생자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예인일 뿐 아니라 자연인이기도 했던 그 사람은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살아갈 의욕을 낼 수 없는 '심리적 임계점'을 초과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마약과의 전쟁'에 만만한 연예인을 겨냥
'이선균 사태'는 지난해 10월 한 지역신문의 추측성 기사에서 시작됐고 언론, 유튜버 등 개인방송, SNS, 온라인 게시판 등에서는 그 사람이 죽기까지 3개월간 무차별적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서로 책임을 미루지만 발단은 경찰이었다. 경찰은 정식 수사 절차도 시작하지 않은 '입건 전 조사' 단계인 '내사 단계'부터 기사를 흘리기 시작했다. 틈틈이 언론과 여론에 대해 '지나친 억측을 삼가 달라'고 경계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그 사람과 관련된 억측과 나아가 사생활, 일탈에 대한 부분이 몸집을 부풀리며 새어 나왔다. 심지어 그가 죽고 난 후에도 '그가 죽은 방식'이라든지 유족들이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까지 덧붙인 유서 내용의 일부도 공개되었다. 이선균씨의 사망 후 경찰조직의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번 사건을 수사한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수사 과정에서 일체의 잘못이 없었다'고 유감 없는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는 분명 '사건관계인 출석정보 공개 금지' '수사 과정 촬영 등 금지' '심야조사 제한' '장시간 조사 제한' 등 경찰의 수사 과정상의 많은 위반이 지적되고 있다. 수사는 죄를 밝히는 것만큼 혐의를 벗겨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어야 함에도 경찰은 죄를 밝히는 데만 급급했고, 그도 여의치 않자 이선균씨를 3차례나 공개 소환해 '망신'을 주며 압박했다.
경찰의 이런 방식은 과학적인 수사가 도입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조리돌림식 망신주기 수사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이번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기조가 경찰조직으로 하여금 이선균씨를 더 극적으로 압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논평 또한 존재한다.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깃발을 올렸으나 내세울 만한 업적이 변변히 없자 '만만한' 연예인을 잡도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평소에 우리는 하늘의 별이라며 그들을 우상화하고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슈를 만들고 포장하고 터뜨리는 데 이용할 만한 만만한 상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재벌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경찰이나 여론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고 이선균씨 외에도 지드래곤의 무혐의 사례도 있다. 또 과거 세 차례나 마약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되었으나 무죄로 풀려났고, 그에 대해 경찰과 언론 어디에서도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없었던 구준엽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일익을 담당한 언론도 당연히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공정한 사실 확인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확고해야 할 언론이 경찰의 이런 태도를 지적하고 경계하기는커녕 경찰이 던져주는 대로 받아 물었고, 더 나아가 과잉생산해 '클릭 수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유튜버 같은 개인방송, SNS 온라인 뉴스 등이 '클릭 수'를 향한 이전투구를 벌였다. 급기야 공영방송인 KBS조차 이선균씨의 범죄 사실과 상관없는 '녹취록'까지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9시 뉴스에서 '단독'이라며 보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로마시대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 보는 듯
그 기사들은 의심을 품을 일고의 가치도 없이 경찰 누군가로부터 새어 나왔을 것이지만, 그 진위나 저의를 알아보기도 전에 클릭 수를 위해 개인의 인권이 희생되는 데 언론이 일조한 셈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든 언론은 그 사회 대중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영방송의 이런 태도는 심히 우려스럽다. 그에 더해 가로세로연구소 같은 비방성 개인방송들은 남의 사적 영역을 들여다보는 '관음증'을 부추기고, 포장된 정의감을 시전하며, 대중의 '마녀사냥'식 흑색 여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공정한 사법부를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잃었기에 평정심이나 연민·공감에 대한 감수성을 가질 여유도 없어진 대중은 사적인 보복·복수 방송에 열광할 뿐 아니라 비난과 조롱을 담은 댓글로 자신들의 적의를 해소한다. 요즘의 사태들을 보면 옛날 로마에서 시전되곤 했던 '검투사와 야생동물'의 싸움을 보는 것 같다. 배고프고 불만에 찬 대중의 스트레스를 더 만만한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대리만족시키려는 의도였을까?
황제가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콜로세움 경기장에는 노예로 팔려온 검투사들이 등장하고, 곧이어 굶주린 사자나 호랑이, 곰 등이 등장해 그들을 공격한다. 검투사끼리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검투사에게는 군중의 박수와 응원, 혹은 비난이 주어지고, 그의 생사는 황제에 의해 좌우되는 광경이 펼쳐진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황제, 군중, 검투사가 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살아갈 사회는 이미 어디로 도망가 숨을 수 없이 SNS라는 촘촘하고 투명한 유리로 덮인 곳이 돼간다. 챗GPT가 일상이 되면서 가짜뉴스가 양산되고 피해자는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
사회의 어떤 단순한 사건도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요인을 내포한다고 보면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확고해졌다. 바로 '인간'이 빠졌다는 것이다. 소중한 생명을 갖고 태어나, 사랑과 관심으로 자라고 살며 서로 돕고 소통해야 할 인간, 그리고 그 인간에 대한 '존중감' 말이다. 최소한 '나라면' '내가 아끼는 누구였다면'이라고 입장만 바꿔볼 수 있었더라도 경찰과 언론, 그리고 우리들은 좀 더 상대의 존엄성에 예민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구에게 손가락질할 것도 없이 그 손가락의 방향은 우리 자신을 가리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점점 '악의' '복수' '경멸'이라는 괴물을 키워가고 있음을 각성하고 경계해야 한다.
예전에 들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해준다는 인디언 속담이 생각난다. "우리 마음속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 두 마리가 살고 있단다." "누가 이겨요?" "네가 더 먹이를 많이 준 늑대가 이기지." 2024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마음속 누구에게 먹이를 더 줘야 할까?
이선균씨가 죽어갈 때까지 생각하고 괴로워 했을 것들이 참혹하고, 그에게 인간으로서 부끄럽고 안타깝다. 고(故) 이선균씨 영전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 다 잊고 용서하고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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