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위고비'가 극단적 선택 충동 유발? "연관성 적어"
비만치료 및 당뇨병 치료제로 활용돼 온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가 자해·자살 등 극단적 선택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보고에 대해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5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에 다수 보고된 위고비, 오젬픽 등 GLP-1 유사체 세마글루타이드가 극단적 선택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건에 대해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가 연구를 진행한 결과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비(非) 세마글루타이드계 약물보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이 낮다"는 결론이 나왔다.
GLP-1 계열 비만·당뇨병 치료제는 최근 '네이처', '사이언스'가 꼽은 2023년 한해를 빛낸 과학 연구로 선정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식욕 조절에 관여하는 호르몬 GLP-1를 모방한 물질(유사체)을 사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체중 조절을 돕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할리우드 스타 킴 카다시안이 복용해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유명해진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이 대표적이다. GLP-1 유사체 세마글루타이드가 주성분인 이들 약품은 체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췌장, 위 문제, 근육량 감소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부작용 사례가 보고돼 왔다.
세마글루타이드가 자해·자살 등 극단적 선택 충동을 부추긴다는 사례도 최근 FDA 부작용 보고 시스템에 보고되면서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EMA는 지난해 7월 GLP-1이극단적 선택 충동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의 보고 약 150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생물의학과 연구팀은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와 함께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약품인 위고비와 오젬픽을 처방받은 사람의 전자건강기록 5만 3000여 건을 분석했다. 비(非)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유사 약품을 처방받은 사람과 그 결과를 비교했다.
조사 결과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치료제를 처방받은 첫 기간인 약 5.3개월만에 개인 의료 차트에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이 추가된 사람의 비율은 0.11%였다. 비 세마글루타이드계열 치료제 처방군 중 같은 복용 기간 내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을 느꼈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0.43%였다.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치료제 복용자 중 해당 기간 동안 자해·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례는 없었다.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당뇨병 치료제 처방을 받은 환자의 6개월 후 상태를 비교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이 의료기록 16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비 세마글루타이드계 치료제 복용자 중 극단적 선택 충동을 보고한 환자의 비율이 세마글루타이드계 복용자보다 약 2배 많았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종합해 5일(현지시간) 세마글루타이드가 극단적 선택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와 극단적 선택 충동 간 상관관계가 적다는 것이지 비만치료제가 극단적 선택 충동을 '억제시킨다'는 결론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추가 연구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GLP-1 유사체 계열 약물이 췌장염, 장폐색 등 심각한 위장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마야르 에트미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약리학과 박사는 '사이언스'에 "위장병 등 추적이 쉬운 합병증과 달리 약물의 정신적 영향은 환자 판단에 의해 보고되지 않을 수 있어 실제 영향이 간과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은 사람이 실제 약을 복용하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위고비 등을 처방받는 환자 중 약 70%는 부작용이나 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복용을 중단한다. 의료기록이 환자의 실제 건강상태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크리스토퍼 톰슨 미국 브리검 여성병원 체중관리 및 건강센터 공동책임자는 사이언스에 "5~6개월 정도 단기간에 이뤄진 관찰은 치료제의 정신적 부작용을 판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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