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에게 ‘왕따’ 당하던 포스코 회장 3연임 포기의 의미 [아침햇발]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3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윤석열 정부의 압박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지만, 포스코나 최 회장 모두를 위해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년쯤 전 일이다. 포스코 모 회장과 단출히 만났다. 정권 교체 직후 민감한 시기였다. 결례를 범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자진사퇴를 권유했다. 새 정권이 머지 않아 회장을 중도 퇴진시키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려할 텐데, 그 전에 자진사퇴하라고 했다. 현직 회장의 ‘셀프 연임’ 논란이 있는 최고경영자(CEO) 선임절차 개선, 연줄을 배제하고 역량·자질·리더십이 뛰어난 차기 CEO 선임도 함께 주문했다. 포스코 CEO가 권력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어 국민에 박수 받고, 후배들에 존경받는 CEO가 되라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권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회장은 결국 몇 달 못 가 권력의 압력에 못이겨 중도하차했다.
최근 포스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최 회장을 겨냥해 노골적인 퇴진 압박을 가했다. 대통령과 함께 하는 해외경제사절단, 경제계 행사 때 그를 모두 배제했다. 세일즈 외교를 앞세워 다른 재벌 총수들은 과도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부르면서, 재계 5위 포스코의 회장만 ‘왕따’시키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그런데 최 회장은 의외의 반전을 보였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회장 임기를 완주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포스코 회장이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것은 1993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2대 황경로 회장을 시작으로 정명식·김만제·유상부·이구택·정준양·권오준 회장까지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권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 회장의 약점을 찾았을 것이다. 최 회장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역으로 깨끗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최 회장은 이어 지난해말 현직 회장의 연임 우선 심사제를 폐지해 현직 회장 특혜론을 해소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3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10여년 전 그 회장에게 기자가 권유한 내용을 최 회장 스스로 실행한 것이다. 그가 지난 5년간 보여준 성과로 보면 3연임 도전 자격은 충분하다. 이차전지소재·에너지·수소 등 미래 신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로 포스코를 철강기업에서 탄소중립시대에 맞는 친환경 미래소재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3연임 포기는 권력 개입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살신성인의 용단이다.
포스코는 대일청구권 자금을 포함한 국민혈세로 지어진 국민기업이다. 이후 50여년간 ‘산업의 쌀’인 철로 국가에 공헌한다는 ‘제철보국’의 이념으로 경제발전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박태준 초대 회장이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난 이후 ‘CEO 흑역사’가 지속됐다. 2000년 민영화 이후 정부 주식이 한주도 없는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했지만, 정권의 인사 개입과 이권 챙기기는 멈추지 않았다.
포스코는 지정학적 위기와 미·중 패권경쟁 심화, 공급망 재편, 글로벌 경기부진, 철의 생산방식에 근본 변화를 요구하는 기후위기까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자격도 없이 권력 입맛에 따라 내려 꽂힌 최고경영자가 투자자들에게 회사 비전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쳐질까? 회사 안에서도 영이 제대로 서겠나? 최고경영자가 시장과 회사 내부에서 신뢰를 못받는 기업이 온전할 리 없다. 포스코와 유사한 CEO 흑역사를 겪어온 통신업계 원조 케이티(KT)가 업계 1위에서 밀려난 데 이어 2위 자리마저 위태로운 게 우연이 아니다.
73년 역사를 가진 일본제철은 타산지석이다. 경영진은 회장-사장-6명의 부사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고경영자는 사장이 맡고, 차기 사장은 부사장 중에서 선임하는 전통이 확고하다. 주인없는 기업인 일본제철이 세계 정상권 철강회사로 건재한 비결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CEO 승계시스템이 있다.
최정우 회장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도와서 3월 주총에서 독립적으로 역량과 자질, 리더십을 갖춘 후임 최고경영자를 선임해야 한다. 권력 줄대기를 하는 후보는 내부·외부 출신 상관없이 단호히 배제해야 한다.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까지 포함한 완전한 승계시스템 구축은 차기 경영진의 과제다. 퇴직임원 모임인 중우회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포스코의 CEO 흑역사에 마침표를 찍으려면 정권의 인식전환이 필수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장과 민간 중심 경제를 천명했다. 하지만 ‘셀프 연임’ 차단을 명분으로 케이티·우리은행에 이어 포스코에도 국민연금을 앞세워 개입하고 있다. 포스코가 셀프 연임 특혜 소지를 제거한 상황에서 명분 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한국 주식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조했다.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가 아니라, 재벌총수의 전횡 차단과 함께 정부가 민간기업 인사에 관여하는 후진적 관치의 청산이 첩경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한국의 대표기업인 포스코와 케이티의 회장 교체 시점이 정권 교체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미스터리를 더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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