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폼에 맞서는 ‘제철’ 시와 에세이…하루에 한 편씩 읽어보세요

임지선 기자 2024. 1. 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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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짜리 쇼트폼(짧은 형태) 영상이 대세라면, 시집과 에세이도 이제는 ‘쇼트폼’이다.

출판사 난다가 12명의 시인이 매달 매일 릴레이로 시와 에세이를 써내려가는 ‘시의적절’ 시리즈를 냈다. 1월 난다 대표인 김민정 시인을 시작으로 2월 전욱진, 3월 신이인, 4월 양안다, 5월 오은, 6월 서효인, 7월 황인찬, 8월 한정원, 9월 유희경, 11월 이원, 12월 박연준 시인이 매달 이어받아 책을 내는 형태다. 제철 음식이 아니라 ‘제철 책’인 셈이다. 매일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시, 일기, 에세이, 인터뷰 등 해당 달에 꼭 맞는 날짜만큼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이달 출간된 ‘김민정의 1월’ 책 제목은 <읽을, 거리>다. 김민정은 ‘사람은 읽어야 이해되는 책/ 사랑은 거리로 유지되는 책’이라는 시로 읽을 연다. 자신의 글을 “가벼우나 하얗고 부드럽다./ 흡수하나 솔직히 내보이다.// 이 소박한 읽을 거리를 두고/ 솜의 생김과 그 쓰임이기를 바랐던 마음을 이리 들킨다”고 소개한다.

그의 ‘1월1일’에는 부부싸움을 하고 ‘이혼을 하네 마네’하며 찾아온 친구에게 만화 <영심이>의 삽입곡 한 구절을 시로 들려준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1월2일’에는 에세이다. 저자는 입원 전 검은 비누와 하얀 비누를 챙긴다. 병실 담당 청소노동자는 화장실 세면대에 잿빛 비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비누를 어느 체인 죽집의 네모난 반찬 용기 위에 넣어둔다. 비누는 표면이 잘 말라 있다. 순간 MRI 영상을 보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이 작은 기관이 그 큰일을 하는 겁니다.” 시인은 그의 수고에 감사한다. 김민정은 2018년 1월3일 용산 CGV에서 고 개그우먼 박지선과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1월3일’에는 언니·동생 사이로 지낸 그와 나눈 책 인터뷰가 실려 있다.

어느 날은 2쪽, 어떤 날은 3쪽, 어떤 날은 50쪽, 또 다른 날은 10쪽 등 날짜마다 저마다 쪽수가 다르다. 책장 넘기는 게 힘겹지 않도록 만들었다. 시인의 일상, 그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수록됐다. 매일이 아니어도 읽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서 잠깐의 사유를 허락하는 시집이면서 산문집이다.

난다 측은 “젊은층에서 책 읽는 부담이 크다고 해 두꺼운 책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루에 1편씩 읽도록 ‘일력’처럼 날짜별로 자유롭게 놀아달라고 시인들에게 의뢰했다”며 “유행하는 쇼트폼을 보듯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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