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고객 손실 봐도 직원 성과는 높여" ···금감원, KB·한투부터 현장검사
금감원 "12개 판매사 점검서 다수 문제"
위험성 높아져도 판매 한도 높이고
고객 수익률 없어도 직원 점수는 높여
현장검사서 불완전판매 여부 조사 예정
은행‧증권사들이 고위험 주가연계증권(ELS)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내부 기준을 바꾸거나 직원 핵심평가지표(KPI) 배점에 ELS 판매 실적을 40% 가까이 연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은 판매사들의 이런 행태가 이번에 십수조 원 손실이 가시화된 홍콩 H지수 기초 ELS 사태를 키웠다고 보고 즉각 판매사 현장 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7일 금감원은 홍콩 H지수 기초 ELS 주요 판매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이달부터 H지수 ELS의 만기가 도래하며 대규모 투자자 손실이 가시화되자, 지난해 11~12월 5개 은행(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과 7개 증권사(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의 H지수 ELS 판매 실태 관련 현장·서면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H지수 ELS 총 판매 잔액은 19조 3000억 원으로, 이중 은행이 82%인 15조 9000억 원을 판매했다. 투자자별로 보면 개인 비중이 91.4%, 17조 7000억 원에 달했다. 이중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의 투자 규모는 총 5조 4000억 원으로, 계좌 수는 8만 6000개였다. 과거 ELS 투자 경험이 없는 최초 투자자 비중은 계좌 수 기준 8.6%였다.
문제는 전체 잔액의 80%에 달하는 15조 4000억 원어치의 상품 만기가 올해 중 도래한단 것이다. 분기로 따지면 1분기 3조 9000억 원, 2분기 6조 3000억 원 등 상반기에만 10조 2000억 원 규모의 만기가 집중돼 있다. 2021년 2월 1만 2000선 넘게 치솟았던 H지수가 현재는 5600선으로 급락했음을 고려하면, 이 만기 잔액은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유례 없는 대규모 손실을 부추긴 건 자사 수수료 수익 증대에만 집중한 ‘은행’이었다. 특히 H지수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국민은행을 중심으로 금감원은 적잖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가령 금융 당국이 2019년 은행권 고난도 금융상품 취급 한도를 규제하며 국민은행에 설정한 주가연계신탁(ELT) 판매 한도는 약 13조 원이었다. 이때 국민은행은 자체적으로 (지수) 변동성이 30%를 넘기는 등 상품 리스크가 높아지면 판매 목표액의 절반만 판매하기로 정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2021년도에 돌연 이 판매 목표액 감축 한도를 50%에서 80%로 끌어올렸다.
관련 브리핑에 나선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2020년도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S&P500, 유로스탁스50, H지수를 같이 편입한 ELT 상품의 변동성이 확대돼 (자체 기준에 따라) 판매 한도를 50% 감축했어야 하는데, 2021년도에 갑자기 ELT 상품이 많이 팔리니까 이 한도를 갑자기 50%에서 80%로 증액해 판매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도 말 경영 계획에는 2021년도에 신탁 수수료 수익을 전년 대비 42% 증대하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ELS를 많이 팔아야 한다’는 인식은 경영진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직원별 KPI 점수를 산출할 때, ELS는 6개월마다 고객이 조기 상환을 받을 수 있든 말든 판매 직원에게는 조기 상환을 가정한 수익률이 자신의 실적으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개 지수가 모두 현재보다 90%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6개월 뒤에 5%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3년 만기짜리 ELS 상품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고객이 이 상품을 6개월 뒤에 조기 상환받으면, 고객은 5%의 수익률을 받고 판매 직원은 5%가 자신의 KPI 점수 산출에 반영된다. 문제는 3개 지수 중 하나라도 6개월 뒤에 90%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인데, 이때 고객은 조기 상환을 청구할 수 없어 수익률이 0%지만 판매 직원의 KPI에는 조기 상환을 가정한 5%의 수익률이 변함 없이 반영된다.
이렇다보니 손실 최소화를 위해 중도 해지를 요구한 고객을 돌려보낼 유인도 커졌다. 위 상품 손실률이 30%가 된 고객이 견디다 못해 중도 환매를 요구하면, 판매 직원의 KPI에도 마이너스(-) 30%가 반영되지만 고객이 중도 환매를 하지 않으면 플러스(+) 5%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박 부원장보는 “이 경우 (KPI 점수에) 최대 35%포인트의 차이가 발생하니까 고객들이 중도 해지를 요청해도 은행 직원들이 중도해지를 안 해준 사례가 있다고 보고 있다”며 “대부분 판매사들이 (실제) 수익률에 따라 KPI를 반영하는데, 고객 수익률이 0%임에도 처음 계획한 수익률을 KPI에 반영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은행 KPI 총점이 1000점 만점 정도 되는데, 고위험 ELT 판매와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주요 지표 점수 비중이 30~40% 정도로 설정됐다”며 “특히 국민은행은 1000점 중 약 410점이 ELS 판매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신탁 수수료 수익 증대 목표, KPI 배점 과다, 은행 영업점·직원들의 판매 유인 등이 겹쳐 ‘대규모 고위험 ELS 다량 판매’를 자극한 셈이다.
이에 금감원은 8일부터 업권별 최다 판매사인 국민은행,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12개 주요 판매사에 대한 현장 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손실 보상’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불완전판매 여부는 이 현장 검사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박 부원장보는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규 위반 여부, 불완전판매 여부는 현장 검사에서 세밀하게 살필 것”이라며 “국민은행, 한투증권에 대해선 분쟁 민원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한 민원 조사도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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