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넘어온 나무 왜 안자르냐”…이웃 살해한 40대男 ‘심신미약’ 주장 [법조인싸]
알코올농도 0.1% 만취 도주하다 잡혀
1심 26년 선고…항소심 23년으로 감형
법원 “반성하고 있고…공탁금도 맡겨”
“XX, 나무 자르라고”
목소리의 주인은 A씨의 옆집 이웃인 40대 남성 강모씨였다. 시비를 거는 그의 입에선 술냄새가 났다. A씨가 마당에 심어놓은 복숭아나무가 다툼의 발단이었다. 복숭아나무가 강씨 집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을 가렸기 때문이다. 강씨는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돌변하곤 했다. 술을 마시고 저지른 여러번의 전과도 있었다. A씨는 “내 땅에 내가 심는데 무슨 상관이냐. 측량을 해 봐라. 술 취했으니 다음에 얘기하자”고 말하고 그를 피해 집으로 들어갔다.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A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분한 마음이 든 강씨는 부엌으로 가서 회칼을 꺼내들고 A씨의 집 뒷마당으로 갔다. A씨를 발견한 강씨는 그를 넘어트린 다음 몸 위에 올라탄 후 칼로 수차례 그의 턱과 어깨 등을 찔렀다. 강씨를 말리던 A씨의 아내 B씨도 그가 휘두른 칼에 발등을 찔렸다. A씨는 결국 사망했고 B씨도 심한 부상을 당했다.
강씨는 차를 운전해 범행 장소를 빠져나왔고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혈중알코올농도 0.100%의 만취 상태였던 그는 멀리 가지 못했다. 2.7킬로미터를 이동한 그의 차는 그만 도로 밖으로 추락했다. 한 행인이 “으아, 내가 사람을 죽였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강씨를 이상하게 여기고 112에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은 수색 끝에 그를 체포했다. 강씨는 살인과 특수상해,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그러나 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씨가 범행 당시 술을 마신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강씨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의 수단과 방법, 범행 전후의 언행에 비춰보면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강씨는 범행 당시 B씨가 뒤에서 옷을 잡아당기는 등 그를 A씨로부터 떼어내려고 시도했음에도 B씨를 뿌리치고 범행을 이어갔다”며 특수상해의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지난해 6월 강씨에게 징역 26년을 선고했다. 1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내렸다. 재판부는 “강씨는 칼날 길이만 20센티미터에 이르는 칼을 사용해 A씨를 여러 차례 강하게 찌르거나 베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며 “특히 강씨에 의해 배우자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B씨가 입었을 정신적 충격과 고통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항소심은 강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달 22일 강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먼저 강씨가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살인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이자 어떤 방법으로도 피해를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면서도 “1심에선 부인했던 특수상해 혐의를 포함해 범행을 자백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양형에 고려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1심에서 피해자 유족을 위해 2000만원을 공탁했다”고 했다. 유족들이 공탁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재판부는 이를 양형에 유리한 사유로 봤다. 또한 “유족들은 피고인 소유 토지에 대해 청구 금액 2억5696만원의 부동산 가압류 결정을 받았으므로 향후 어느정도 금전적인 피해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라고 했다.
강씨는 지난달 27일 이 결정에 불복해 상고했고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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