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는 예술혼으로 이 속물적 세상을 돌파할 수 있을까('마에스트라')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1. 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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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라’, 이영애도 불륜·불치로 얼룩진 작품의 난관 돌파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프랑스 원작의 리메이크여서일까. tvN 토일드라마 <마에스트라>는 애초 기대했던 클래식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흘러간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그려내는 클래식과 사람이야기(혹은 멜로까지)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이라면 그래서 시작부터 남편 김필(김영재)이 단원인 이아진(이시원)과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 아이까지 갖게 된 상황에 적이 당황했을 게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더 한강 필하모닉을 지휘하게 된 차세음(이영애)은 어머니 배정화(예수정)가 앓고 있는 헌팅턴병 때문에 혹여나 그것이 자신에게도 유전될까 두려움에 빠져 있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손에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고 기억력도 점점 사라져가는 그 무서운 병에 걸려 모든 걸 포기한 채 요양원에서 수십 년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차세음에게는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포 그 자체다.

50%의 유전 가능성이 있는 그 병의 존재가 드러나면 지휘자로서의 길을 계속 갈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남편 김필은 이를 약점 잡아 은근한 협박을 해오고, 이혼할 결심이 확고한 차세음은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병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아직 발병한 것이 아니니 문제가 없고, 혹여나 발병하면 스스로 포디움에서 내려오겠다고 선언한 것.

어머니 배정화는 결국 사망하지만 차세음을 뒤흔드는 사건들은 계속 이어진다. 단원 중 한 명인 김봉주(진호은)는 약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차세음을 스토킹한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한 차세음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한 김봉주는 그날 밤 사체로 발견된다. 마지막 전화통화를 한 차세음을 경찰은 피의자로 심문하고 범인으로 몰아세운다.

경찰 앞에서는 무신경한 척 했지만, 그날 밤 술에 취해 기억이 끊겨버린 차세음은 깨어나보니 손에 있었던 상처와 핏자국으로 자신이 김봉주를 저도 모르게 죽인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빠진다. 결국 유정재(이무생)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되지만, 차세음은 자신의 기억이 끊어진 것이 혹여나 헌팅턴병의 발병 증상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갖게 된다.

이처럼 <마에스트라>는 클래식에 대한 음악적인 소재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보다는 차세음이라는 지휘자를 둘러싼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펼쳐놓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대에서 멀어진 이 작품이 그저 불륜과 불치 나아가 살인까지 동원된 자극적인 사건들로 점철된 드라마처럼 보이는 면이 생긴다. 여기에 차세음을 아무런 조건없이 돕고 좋아하는 유정재라는 인물 또한 프랑스 원작에서는 멋진 인물로 그려질지 몰라도 한국적 정서에는 여전히 부적절한 관계로 비춰진다. 그래서 6%(닐슨 코리아)까지 올랐던 시청률이 뚝뚝 떨어져 다시 4%대로 내려앉은 건 기대와 다른 전개의 실망감이 작용한 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잘 들여다 보면 이 득시글한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욕망들이 난무하는 상황에 홀로 대응하는 차세음이라는 인물이 보인다. 이 인물은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아파하긴 하지만 금세 자신의 본분인 지휘자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는 한강 필하모닉을 위해서 심지어 남편의 작곡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차세음에게는 모든 것들의 우선 순위로서 오케스트라와 지휘가 있다. 그래서 이 속물적인 사건들을 차세음은 예술로 돌파해나가려는 듯 보인다.

헌팅턴병이 공개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한강 필하모닉을 위한 선택을 하고, 김봉주가 터트린 마약 스캔들로 단원들이 모두 나가려 하자 자신의 연봉을 깎아서 그들의 연봉을 올려줘서라도 오케스트라를 유지해나가려 한다. 또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한강 필하모닉을 위해서 이전에는 절대 하려 하지 않았던 남편과의 다큐멘터리도 찍으려 한다. 이런 선택들을 무조건적으로 옆에서 돕던 유정재조차 그녀를 납득하지 못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며 그깟 오케스트라 떠나면 그만이 아니냐고 묻자 차세음은 이렇게 답한다. "그래 떠나면 그만이지. 근데 내 마지막 오케스트라일 수 있잖아."

차세음은 베토벤의 '운명' 합주에 앞서 그 곡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베토벤이 교향곡 5번을 작곡할 당시에는 귀는 점점 멀고, 사랑은 실패하고 아주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비서 안톤 쉰들러는 자서전에 베토벤이 1악장 동기를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했다고 썼어요. 사실의 유무를 떠나서 베토벤이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과 맞서서 싸우려는 결연의 의지가 느껴지는 1악장입니다." 그 설명처럼 차세음은 자신에게 닥친 난관과 운명들과 끝까지 싸워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애초 기대와는 달리 시청자들에게 비춰지고 있는 이 작품을 맞이하고 있는 이영애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게다. 과연 이영애는 자신의 연기를 통해 그저 자극적인 상황들이 나열되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을 사실은 예술에 대한 이야기라고 바꿔놓을 수 있을까. 남은 몇 회의 전개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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