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만 빼면 완벽한 인생”, ‘스나이퍼’ 장성호가 9년차 해설자로 사는 법[이헌재의 인생홈런]
선수 생활 말엽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면서 그는 통산 타율 0.296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아쉬워하는 건 통산 타율 3할이 아니라 99개에 멈춘 통산 도루 수다.
선수 생활 내내 그에겐 ‘발이 느리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뛸 수 있을 때 뛰었고, 착실히 도루 숫자를 늘려나갔다. 장성호는 “이왕이면 100개 또는 200개처럼 딱딱 끊어지는 게 좋지 않나. 하지만 99도루는 내게는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아마 장성호가 도루를 100개 가까이 했다는 걸 아는 야구팬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그는 엄청난 승부욕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훈련 및 경기에도 진지하게 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스스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훈련도 열심히 했고, 동시에 노는 것도 열심히 놀았다”고 말한다.
그가 여느 은퇴 선수들처럼 야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100% 최선을 다했따고 하긴 어렵겠지만 선수 생활 내내 후회 없이 방망이를 돌렸다고 생각한다. 은퇴한 이후에도 배트를 잡고 스윙을 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스프링캠프에 가기 전에 몸을 만드는 꿈을 꾸곤 한다. 그는 “나뿐 아니라 프로 선수라면 모두 열심히 훈련한다. 손바닥이 까지고, 근육에 알이 배기는 게 일상이다. 요즘도 훈련하는 꿈을 꾸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 일어나곤 한다”고 했다.
2012년 한 스포츠케이블TV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 당구 대회에 출전한 게 그가 해설자가 된 계기였다. 지금이야 프로당구가 출범하며 당구 중계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당구 해설을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날도 따로 해설자가 없어 경기에 출전한 야구 선수들이 번갈아 중계석에 앉았다. 평소 위트가 있고, 언변이 좋았던 그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그곳에서 찾게 됐다. 장성호는 “굉장히 흥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은퇴가 다가올수록 나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던지, 발음을 정확히 하면서 또박또박 읽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수시로 해설자들이 바뀌는 가운데 그는 큰 사건, 사고 없이 9년째 중계석을 지키고 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야구 해설을 위해 그는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진다. 정치와 경제, 사회, 영화, 심지어는 날씨까지 야구 해설을 위한 좋은 소재가 된다.
야구 공부도 열심히 한다. 메이저리그 사이트들을 찾아보고, 야구 인플루언서들의 글도 꼼꼼히 읽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동료 해설위원이나 기록원들에게도 수시로 물어본다. 그는 “현대 야구는 시시각각 변한다. 몇 년 전부터 세이버매트릭스(야구 통계학)이 관심을 끌었고, 시프트와 발사각도 등도 유행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도입한 피치 클락 등이 큰 화제”라며 “야구가 계속 바뀌고 있으니 싫증이 날 틈이 없다. 내게 해설 권태기가 없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3년전부터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 U리그 왕중왕전 해설도 시작했다. 프로야구 중계와 시간이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해 오전 9시 경기를 위주로 중계를 잡는다.
작년 어느 날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하고, 야구의 참견 녹화까지 끝난 뒤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전 9시 대학야구 중계를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는 “딱 두 시간 눈 붙이고 중계를 하러 나갔다. 힘은 들었지만 ‘내 위치에서 아마추어 야구를 위해 할 수 있는 하자’는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야구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갈 길도 멀다. 하지만 프로야구 중계에 비해 할 얘기는 훨씬 많다. 가끔씩 누가 봐도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가 나오곤 한다. 대체 어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아마추어 야구가 처한 어려운 현실과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매력들을 더 많이 알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을 가볍게 걷는 것도 좋아하고, 아내와 함께 서울의 인왕산과 안산 등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도 즐긴다. 행주산성 둘레길 등도 종종 간다.
하지만 살찌는 건 막기 힘들다는 게 그의 호소다. 장성호는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몸이 아픈 곳은 없다. 그런데 운동 덕분에 입맛이 좋아지고 먹성이 좋아진 것 같다”며 “한 번 찐 살이 잘 빠지지 않아 고민이다. 결국 음식 조절과 절주가 핵심인 것 같다. 뱃살만 좀 빼면 내 모든 삶이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라며 웃었다.
현재 그가 사는 아파트는 36층 건물이다. 지하 6층에서 꼭대기인 36층까지 오르면 42층이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의 체중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배웠다. 계단 오르기는 내가 갖고있는 신체를 고스란히 쓰는 운동이다. 올해 최소 이틀에 한 번은 계단을 오르며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명 습격범 태워준 외제차 CCTV 포착…차주 누구길래?
- 한동훈 만난 文 “편협한 정치로 통합 멀어져…세상 거꾸로 가”
- 한강서 흉기에 훼손된 여성 시신 발견…“사인 조사 중”
- 이준석 만난 금태섭 “몸집 키운 뒤 서로 합칠 단계 올 것”
- “물건도 날아갔다”…美여객기, 5000m 상공서 비상문 뜯겨나가
- 천하장사 출신 씨름선수, 재활병원 옥상서 추락해 사망
- 이재명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민생·평화, 우리 손으로 지키자”
- 北, 이틀 연속 도발… 연평도 북서방서 60여발 사격 실시
- 한동훈 “함께 해달라” 국민의힘 입당 제안…이상민 “숙고하겠다”
- ‘불륜 스캔들’ 女배우, 내연남과 3번째 결혼설…연기 복귀는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