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도 좋아요"…회계사·직장인도 '중국산'에 빠진 이유

안혜원 2024. 1. 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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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테무 등 중국 쇼핑앱
초저가·무료배송으로 韓시장 잠식
가품이 버젓이 팔리는데…
정가 절반도 안 돼
소비자들 "알고도 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한모씨(48)는 최근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일단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같은 중국 이커머스 어플리케이션(앱)을 검색해본다. 최근엔 알리에서 안경 클리너, 휴대폰 거치대 등 생활용품 몇 가지를 샀는데 국내 온라인몰 최저가보다도 70%가량 저렴했다. 무료 배송, 무료 반품 혜택까지 있었다. 한씨는 “초저가에다 배송, 결제 단계에서 혜택도 있으니 안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알리를 통해 처음 구매한 물건은 스마트 체중계. 국내에선 6만원 가까이 하지만 여러 할인 혜택을 받아 채 1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구매했었다. 하지만 막상 받아보니 생각보다 사이즈가 커 반품했는데, 쇼핑몰 측에선 비용도 받지 않고 바로 물건을 회수해 갔다. 까다로운 절차 없이 무료로 반품 가능했던 이 경험이 한씨가 중국 앱에 빠진 이유가 됐다.

국내에서 알리·테무·쉬인 등 중국 직접구매(직구) 플랫폼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오르면서 한 푼이라도 싸게 살 수 있는 중국 쇼핑앱에 국내 소비자들도 몰리는 것이다. 이들은 초저가 정책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전략으로 단숨에 쿠팡, 11번가 같은 기존 업체들을 위협할 만큼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가고 있다.

 ‘최저가’ 공략에 中플랫폼 찾는 소비자들

7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앱 1·2위는 중국계 이커머스 기업 알리익스프레스와 판둬둬의 자회사 테무였다. 알리는 지난해 11월 기준 월간활성사용자수(MAU)가 707만명에 이르렀다. 11개월간 사용자 수가 371만명이나 늘었다. 테무의 지난해 11월 MAU는 354만명이었다. 지난 7월 국내에 진출해 4개월 만의 성과다.

인천시 중구 인천공항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에 직구물품들이 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돌풍은 실제로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쿠팡·네이버도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해 상반기 한국 소비자들이 쇼핑 앱 등을 통해 중국에서 직접 구매한 금액은 1조4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상반기에만 2022년 한 해 중국 직구 금액(1조4858억원)과 맞먹을 만큼 급성장세를 보였다. 이미 해외직구 주문 건수 기준으로 지난해 1·2위는 알리와 테무로, 이들의 합산 점유율은 43%에 달했다. 알리 점유율이 26.6%인데 쿠팡은 12.8% 수준에 그쳤다.

2018년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알리는 작년 3월 영화배우 마동석을 모델로 내세우고 국내 시장 10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히며 공격적으로 시장 확대에 나섰다. 해외직구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배송비와 기한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수백만개 상품에 대해 5일 내 배송을 보장하고, 1000원짜리도 공짜 배송을 해주는 정책으로 빠르게 회원을 늘렸다. 지난달부터는 더 빠른 배송을 위해 한중 전용 고속 화물선 6척을 정기 운행하기로 했다. 테무도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가입만 하면 30만원 공짜’ 쿠폰을 배포할 정도다.

 초저가 비결은…생산업자-해외 소비자 직접연결

이처럼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배송 비용을 줄이고 저가 전략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이어줘 유통 경로를 줄였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중국 도매시장에서 제품을 사입한 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을 통해 파는 구매대행이 많았다. 그러나 알리, 테무는 이 같은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하고 중국 내 생산자와 해외 소비자를 바로 연결해 판매가를 낮췄다.

테무 앱에서 판매되고 있는 초저가 상품. 사진=테무 앱 캡처.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로 유통 방식을 바꾸면서 관세를 면제받은 것도 가격 경쟁력에 영향을 미쳤다. 세관에 따르면 해외에서 국내 판매용으로 물건을 들여올 때는 정식으로 수입 신고를 하면서 관세를 내야 한다. 제품을 대량 수입하는 일반 소매업이 대상이 된다. 하지만 테무나 알리는 고객 하나하나에게 우편으로 물품을 보내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개인이 직접 사용할 목적으로 직구한 150달러(미국 물품은 200달러) 이하 물품의 경우 수입 신고 없이 관세 등을 면제받고 목록 통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격은 더 쌀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중국 직구가 관세를 피하기 위한 우회로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규제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직구를 위해 발급되는 개인통관고유번호는 이미 2500만건을 돌파했다. 800달러(약 100만원) 이하의 수입품은 무관세인 미국에서도 중국산은 이런 기준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할 정도로 중국 직구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미국 수입 물량에서 무관세를 적용받은 물품 10억개 중 3분의 1이 쉬인과 테무에서 발송한 상품이다.

 짝퉁이라도…소비자들 “상관 없어요”

중국 쇼핑 앱들의 고질적인 가품, 이른바 ‘짝퉁’ 문제도 소비자들은 정작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대학원생 강모씨(28)는 중국 직구 앱을 통해 일부러 ‘짝퉁’ 제품을 샀다. 최근엔 우영미 티셔츠, 에센셜 후드티 등 의류 제품을 많이 샀는데 비교적 질도 만족스러웠다. 실제 리뷰에서도 “이 정도면 입을 만하다”는 평이 많았다. 강씨는 “유행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트렌드를 따라 제 값을 주고 옷을 사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싼 값에 중국 가품을 사서 한 철 입고 버리고 또 새 제품을 사는 식이다. 요즘엔 중국산 짝퉁도 질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회계사로 근무 중인 박모씨(39)도 알리에서 ‘문재인 안경’으로 유명한 린드버그 모르텐 안경을 하나 더 샀다. 80만원짜리 고가 안경이라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하면서 벗겨져 잃어버릴까 불안해서다. 알리에서는 거의 12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의 6만원대 모르텐 안경을 살 수 있었는데 무게도 2.5g(진품은 1.9g)으로 큰 차이가 없고 싼 가격 덕에 부담 없이 쓸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박씨는 “당연히 짝퉁인 걸 알고 샀다”며 “1년 전 여행에서 안경을 한번 잃어버린 경험이 있어 여행용으로 하나 사뒀는데 생각보다 품질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글에서 '알리익스프레스' '짝퉁', ‘테무’ ‘짝퉁’ 키워드 조합으로 검색한 결과. 사진=구글 캡처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에 따르면 알리에서 한국 전체 거래량 대비 가품 이의 제기는 0.015%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가품인 것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구매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이커머스가 모방품을 철저히 단속하는 것과 달리 중국 직구 앱은 이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는 모양새. 구글에서 '알리익스프레스' '짝퉁', ‘테무’ ‘짝퉁’ 키워드 조합으로 검색해보면 '짝퉁 명품 시계 – Temu 공식 홈페이지‘, ’AliExpress에서 짝퉁 명품 시계를 구매하고 무료로 배송받자' 등의 안내 문구가 뜨는 식이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도 초저가 공세 앞에선 무용지물이 됐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사실 국내 쇼핑 앱에서 팔리는 제품 상당수는 이미 중국산”이라며 “중국과 충돌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중국 쇼핑앱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데 한국 소비자라고 저렴한 물건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저가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는 중국이 당분간은 대량 생산 능력을 기반으로 유통망과 인터넷·모바일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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