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박씨' 정시아 "며느리·아내·엄마 아닌 '나'를 찾은 작품" (인터뷰 종합) [단독]
[OSEN=연휘선 기자] 배우 백윤식의 며느리, 백도빈의 아내, '우남매' 준우와 서우의 엄마. 그 사이에서 연기자 정시아이자 인간 박현정.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을 통해 '나'를 찾아간 배우 정시아를 만나봤다.
지난 5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약칭 열녀박씨)'은 죽음을 뛰어넘어 2023년 대한민국에 당도한 19세기 유교 걸 박연우(이세영 분)와 21세기 무감정 끝판왕 강태하(배인혁 분)의 금쪽같은 계약 결혼 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다. 이 가운데 정시아는 강태하의 회사 SH서울 마케팅 팀장 오현정 역을 맡아 감초로 활약했다. 이에 최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정시아를 만나 작품과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999년 KBS 2TV 드라마 '학교2'로 연기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해온 정시아. 예능까지 쉬지 않고 활동한 그이지만 지상파 드라마는 2019년 방송된 MBC 드라마 '황금정원' 이후 4년 만이었다. MBC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호흡을 맞춘 박상훈 감독이 '열녀박씨' 연출을 맡으며 다시 한번 정시아에게 러브콜을 보내 출연이 성사됐다.
정시아는 '열녀박씨'에 대해 "저한테 이번 작품은 터닝 포인트"라고 자신있게 운을 뗐다. 그는 "배우로서도 어떤 한 사람으로서도 그렇다. 전에는 굉장히 잘 하려고 노력했다. 제 나름의 완벽주의가 있는데, 저희가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고 그렇게 20년 넘게 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의 중심이 타인에게 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맞게 일하다 보니 '내가 행복하게 일하고 있나?'라는 고민이 많았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배우를 20년 넘게 했는데. '열녀박씨'를 하면서 그런 고민을 했고 촬영하면서 나름의 해답을 찾아간 것 같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저도 이제 중견배우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남은 연기자의 생활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나름의 고민이 많았다. 이번에 많이 배웠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천호진 선배님부터 진경 선배님, 김여진 선배님, 이준혁 선배님 빼고는 제가 제일 연장자였다. 특히 오현정이 주로 등장하는 SH서울 마케팅 팀에서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그게 너무 어색했는데 어느 순간 후배들이 너무 예뻐보였다. 유선호 군은 거의 제 아들 뻘이었다. 준우(아들)보다 한 살 많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촬영장에서 어떤 브릿지 역할을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정시아는 "전에는 저의 역할이 엄마, 며느리, 아내, 배우라고만 생각했다. 가치 평가의 기준이 타인에게 있던 시간들이 길었다. 지금도 제가 해내야 하는 역할들은 있지만 이제는 그 기준을 '나'로 삼고 싶다. 나름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가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제 본명이 박현정이다. '오현정'이라는 캐릭터 이름을 듣자마자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정시아는 "그래서 더 나를 찾으려고 한 것도 있다. 촬영장에서 '정시아'가 아니라 '현정 팀'이라고 불렸는데 자연스럽게 인간 박현정에 대해 생각을 하게 돼더라.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를 시작했던 '학교2'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학교2' 때 감독님 아들이 '위라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박위 씨다. 갑자기 생각나 SNS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러면서 모든 게 감사해졌다. 아무것도 몰랐던 배우를 꿈꾸던 고등학생 박현정이 배우 정시아가 됐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러웠다. 이제는 박현정으로 불린 시간보다 정시아로 불린 시간이 더 길었는데 그러면서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녀박씨'는 그런 제게 이름을 찾아준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섬세하게~"라는 대사를 달고 살았던 오현정. 정시아가 제일 섬세해지는 순간은 "일할 때"라고. 정시아는 "평소에는 진짜 털털하다. 상상도 못하실 거다"라고 웃으며 "시청자 분들에 대한 예의가 있다 보니 예능에 나가도 다리도 안 꼬고 있는 편이다. 저도 옛날 사람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외모로나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서 '좋게 조여야 한다'라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다. 이제는 너무 완벽하지 않으려고 한다. 전에는 무조건 열심히 결과만 생각하면서 했다. '잘해서 칭찬 들어야 하는데'라고. 그러다 보니 과정을 즐긴 적이 없었다. '열녀박씨'를 시작할 때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결과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나니 한층 더 자연스럽게 일을 하게 됐다"라고 자평했다.
MBC에브리원 '무한걸스', SBS 예능 프로그램 '오 마이 베이비' 등 과거 예능에서도 활약했던 정시아. 다시 활발한 예능 출연도 볼 수 있을까. 정시아는 "'무한걸스'는 정말 제 결혼 전 20대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다. 제가 실제로는 정말 조용한 편인데 그걸 깨준 순간이기도 하다. 예능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도 영화도 제안이 들어와도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해보려고 한다"라며 의욕을 다잡았다. 다만 그는 "'오마베'도 아이들의 예쁜 순간을 담아주셔서 감사한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이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건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할 것 같다"라며 조심스레 덧붙였다.
더불어 정시아는 "사실 나이가 들면서 2030 후배들이 주가 되고 밀려나는 것들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당연하다고 생각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열녀박씨'를 하면서 배우로서는 꿈이 더욱 생겼다. 예전에는 '정시아'의 이미지가 있어서 코믹하고 밝은 걸 많이 했는데 이제는 다른 역할도 해보고 싶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진경 선배님, 김여진 선배님을 가까이서 보면서 '저 분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내가 10년이 지났을 때 저 분들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악역도 도전해보고 싶고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는데 저도 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끝으로 그는 "'열녀박씨' 촬영을 마치면서 울었다. 작품이 끝나서 울었다기 보다 나를 위해 고생해준 스태프들과 촬영 현장이 보였다. 예전엔 못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 거다. 나를 위해 애써준 그 마음과 시간들이 고마웠다.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를 찾은 시간들로 다시 한번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 monamie@osen.co.kr
[사진] 모먼트이엔티,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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