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마무리에 나란히 ‘세이브 보너스’ 조건···작정한 샌디에이고, 고우석이 뚫고 나갈 경쟁의 문

김은진 기자 2024. 1. 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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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에 입단한 고우석이 계약 뒤 홈구장 펫코파크에서 촬영하고 있다. 리코스포츠 에이전시 제공



한국인 메이저리거 1세대인 박찬호가 1997년 14승을 거두며 ‘코리안특급’으로 올라섰을 때 다저스에는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있었다. 박찬호보다 1년 늦게 입단했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서 이미 특급 투수로서 미국에 진출한 노모도 그해 14승을 거뒀다. 이미 3년 연속 10승 이상 거두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아시아 선수가 많지 않던 시절, 독보적인 한국인 선수가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한 팀에서 선발로 뛰는 한국과 일본의 두 투수는 시선을 모았다. 박찬호는 그해부터 승승장구했고 노모는 이듬해 트레이드 됐지만 둘은 한국과 일본의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가장 깊은 라이벌로 기억되고 있다.

20년 뒤 다저스에서는 류현진과 마에다 켄타가 선발 경쟁했다. 2013년 한국 최고의 투수로서 미국에 간 류현진은 2년 연속 14승을 거뒀으나 어깨 수술로 멈춰섰다. 그 사이 2016년 마에다가 다저스에 입단했다. 류현진이 부상과 재활로 2015년부터 2년간 1승도 거두지 못한 반면 마에다는 첫해 16승을 거뒀지만 이듬해 초반 부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선발진이 꽉 차 있던 당시의 다저스에서 2017년 류현진은 선발 한 자리를 놓고 마에다와 경쟁을 해야 했다. 그해 류현진은 5승, 마에다는 13승을 거뒀다. 가을야구 로스터에는 류현진이 제외됐다.

이제 2024년, 샌디에이고에 입성한 고우석(26)이 한일 경쟁의 문을 다시 연다. 입단하자마자 일본인 투수 마쓰이 유키(29)와 마무리 경쟁을 예고했다.

고우석은 KBO리그에서 7년간 뛰며 5년 동안 마무리로서 139세이브를 거두고 미국에 갔다. 마쓰이는 일본프로야구 라쿠텐에서 10시즌 동안 236세이브를 거둔 일본 국가대표 마무리다. 당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마무리가 동시에 미국에 가 한 팀에서 만났다.

한쪽이 먼저 입단해 자리잡고 있었던 과거의 선배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둘이 같은 선상에서 출발을 하지만 조건은 마쓰이가 앞서 있다. 경력도 길지만 5년 2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2년 450만 달러 보장 계약인 고우석의 몸값과는 큰 차이가 있다. 기존 마무리 조시 헤이더가 자유계약선수(FA)로 나가 뒷문을 다시 짜야 하는 샌디에이고는 대안으로 꼽히던 로베르토 수아레스와 함께 새 투수 둘을 경쟁에 붙인다.

샌디에이고에 입단한 고우석이 지난 6일 귀국해 인터뷰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약조건에서부터 둘의 불꽃 경쟁이 보인다. 고우석의 세부 계약조건을 보면 기본적으로 출전 경기 수에 따른 인센티브가 올해는 70경기에 10만 달러, 내년부터는 40경기째부터 5경기마다 10만 달러씩 추가로 붙는다. 그런데 여기에 마무리를 맡았을 때 보너스가 추가로 붙게 돼 있다. 마무리로서 15·25·35·45경기를 채울 때마다 12만5000달러씩이 붙어 최대 50만 달러가 다음 시즌 연봉으로 더해진다. 보장은 2년 450만 달러지만 최대는 2+1년 940만 달러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계약 조건의 구조는 마쓰이도 비슷하다. 올해부터 마무리로 15경기를 던질 때 15만달러로 시작해 10경기씩 더해질 때마다 25만달러씩 추가돼 55경기 이상 마무리로 뛰면 140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샌디에이고는 이미 지난해 5년 4600만 달러에 영입한 수아레스를 두고서도 한·일 양국의 최고 마무리를 동시 영입하며 작정하고 경쟁을 붙였다. 마무리로 등판해야 몸값부터 올라가도록 설계했다. 특히 마쓰이에게는 2026년 시즌 뒤 옵트아웃 권리를 주면서도 그 전 2년간 토미존서저리를 받거나 팔꿈치 부상으로 장기 이탈할 경우에는 이를 행사할 수 없도록 계약했다. 이미 일본에서 많이 던지고 온 마쓰이에 대한 안전장치도 걸어둔 셈이다.

기본 계약 규모 차이에 있어 마무리 경쟁의 출발점에서는 고우석이 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초반 모습에 따라 뒤집고 자리를 따낼 기회가 충분하다. 2016년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해 중간계투로 출발해 마무리로 시즌을 마친 경험이 있는 오승환(삼성)은 “중간계투로 출발하는 것이 오히려 마무리로 적응해가는 데 도움이 된다. 고우석 구위로는 석 달이면 뒤집을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2024년 샌디에이고에서 벌어질 경쟁은 둘의 생존 경쟁이자 한·일 불펜의 자존심 대결이다. 계약을 하고 지난 6일 귀국한 고우석은 “일단 몸을 잘 만들어야겠고, 시범경기를 하면서 타자와 대결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것 같다. 개막 로스터에 들어가야 진짜 메이저리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제 본격적인 생존 경쟁 준비로 돌입한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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