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女는 왜 포르쉐男에 미칠까”…라면 두끼 먹는 ‘카푸어’, 속사정은 [세상만車]
포르쉐 타면 남성호르몬 증가
‘어쩌면 살 수 있다’ 욕망 자극
자동차 담당기자가 된 이후 종종 차와 관련된 상담을 요청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례입니다.
포르쉐를 무척 타고 싶어하던 32살 남성이었죠.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고, 월급이 많은 직장에 다니지도 않아 포르쉐 차종은커녕 벤츠·BMW 엔트리카를 살 여유도 있지 않았는데 포르쉐를 고집했습니다.
“취업한 지 2년 밖에 안 됐다고 들었는데, 월급 받아 할부금 갚는데 다 쓰는 카푸어(carpoor)가 된다”고 겁을 줘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습니다. 여자를 제대로 사귄 적이 없습니다. 여자에게 다가가기는 겁나니 여자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는 성격이었습니다.
“저보다 못생긴 남자가 포르쉐 오픈카를 타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예쁜 여자가 애교를 부리고 있더라구요. 저도 포르쉐를 타고 다니면 자신감도 생기고 여자도 줄을 서겠죠. 그러니 포르쉐를 사야 해요”
포르쉐에 대한 갈망과 욕망에 아무리 말려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지금 네 상황에서는 현대차 아반떼나 기아 스포티지도 무리다. 정 포르쉐를 사고 싶다면 저렴한 중고차를 골라라. 대신 수리비가 많이 나올 수 있으니 추천하지는 않는다”
결국 서울에서 자취하던 그 남성은 포르쉐를 신차 할부로 구입한 뒤 몇 달 동안 행복해 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했죠. 얼굴에 자신감도 넘쳤습니다.
1년 뒤 연락이 끊겼습니다. 포르쉐 할부금을 감당하지 못해 1년 좀 지나 처분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게 마지막입니다.
라면 두 끼 먹는 포르쉐 카푸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포르쉐를 타면 자신도 포르쉐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죠.
왜 포르쉐일까요. 포르쉐는 국내에서 ‘카푸어 종착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샤넬급’ 포르쉐보다 ‘에르메스급’ 페라리·람보르기니·벤틀리·롤스로이스가 더 폼납니다.
대신 평범한 직장인이 무리해서라도 살 수 있는 1억~2억원대 포르쉐 차량과 달리 에르메스급 슈퍼카·럭셔리카는 그 수준을 넘어설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포르쉐 차량은 한 대로 편안한 데일리카와 다이내믹한 스포츠카 역할을 모두 담당할 수 있습니다. 슈퍼카·럭셔리카는 데일리카가 또 한 대 필요합니다.
같은 브랜드 다른 차종들보다 훨씬 저렴한데다 다재다능한 SUV이니 한 대만 있어도 되기 때문이죠.
여기에 ‘스놉(속물)효과’도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놉효과는 처음엔 차별화된 상품이었지만 소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더 비싸고 더 차별화된 상품을 찾아나서는 현상을 뜻합니다.
서울 강남에서 쏘나타처럼 흔히 보인다는 뜻에서 붙은 ‘강남 쏘나타(싼타페)’ 차종이 렉서스 차종에서 벤츠·BMW 차종으로 넘어간 뒤 이제는 포르쉐 차종이 된 이유죠.
2억~3억원대 슈퍼 SUV는 좁게는 포르쉐 카이엔, 넓게는 포르쉐 브랜드 전략을 따라한 셈입니다.
포르쉐 차량은 부유층이 아닌 중산층에게도 ‘(어쩌면) 실현가능한 로망’이기 때문에 더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예 불가능하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와 달리 ‘혹시 나도 어쩌면’은 로또복권을 사거나 좋아하는 이성에게 다가갈 때처럼 희망과 함께 욕망을 부추깁니다.
2인자 전략과 틈새 마케팅의 핵심인 ‘1석2조’와 ‘다재다능’을 앞세워 슈퍼카·럭셔리카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인 벤츠·BMW·아우디의 빈 공간을 공략했습니다.
슈퍼카·럭셔리카는 특정 소비자를 위해 수작업으로 생산합니다. 반면 포르쉐는 생산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기계식 생산을 도입했습니다.
평범한 슈퍼카를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소비자들은 이솝 우화 ‘여우와 신포도’에서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여우처럼 됩니다. 쳐다보지도 않게 됩니다.
심리적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핑계를 대고 자기 합리화하는 ‘인지 부조화’가 발생합니다.
반면 포르쉐는 슈퍼카·럭셔리카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한 대만 구입하면 됩니다. 물론 비싸기는 합니다.
대신 가질 수 없는 차종이 아니라 ‘쉽게’ 가질 수 없는 로망으로 자리잡아 ‘어쩌면’ 욕망을 자극합니다. “치토스, 언젠간 먹고 말거야”라는 과자 CF가 떠오르네요.
오죽 많았으면 심리학에서도 종종 다룹니다. “남자는 명차(포르쉐)에 미치고 여자는 명품에 미친다”고 합니다.
진화소비심리학자인 개드 사드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과시적 소비와 어떤 연관이 있는 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실험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는 모두 남성입니다. 이들은 포르쉐 스포츠카와 낡은 토요타 세단을 도심지와 외진 곳에서 번갈아 탔습니다.
개드 사드는 처음에는 포르쉐 차량을 여성들이 많은 곳에서 탔을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주차할 곳도 많은데 자신의 차를 뽐내기 위해 유흥가 골목길에서 서서히 운전하는 것처럼 말이죠.
실험 결과는 달랐습니다. 도심지는 물론 외진 곳에서도 포르쉐를 모는 참가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포르쉐가 마치 성적 신호로서의 효력으로 남성의 내분비 엔진도 가속시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와 비슷합니다. 포르쉐를 타면 자신감이 넘친다는 게 구매를 위한 변명만은 아닌 셈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맞다”고 합니다.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죠. 남성들은 비싼 차를 그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실험도 있습니다. 매력이 엇비슷한 남성과 여성이 명차인 벤틀리 콘티넨털 GT와 대중적인 차량인 포드 피에스트 ST에 번갈아 탄 모습을 남녀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같은 남성’이라도 포드 차량보다는 벤틀리 차량에 탔을 때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남성들은 이성을 선택할 때 사회적 지위를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매력도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정치 풍자가인 P.J 오루크는 심리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성의 성적 흥분을 고조시키는 수많은 기계 장치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벤츠 380L 컨버터블이다”
화려한 깃털을 지닌 공작새 수컷, 성기를 모방한 붉은 코를 지닌 맨드릴 개코원숭이는 성적 신호를 보내려다 천적에게 잡아먹힐 수 있습니다. 수컷 사마귀처럼 때로는 동족인 암컷에게 머리부터 먹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카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저렇게 사느냐”는 이유 중 하나가 설명은 되겠죠.
카푸어를 비난할 생각도 없습니다. 적어도 ‘아빠·회사 찬스’를 남발해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벌어 낸 돈을 떼먹지만 오히려 폼 잡고 자랑하는 세금도둑보다는 멋지니까요.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물이 아닙니다. 동물적 본능에 매몰되면 사기꾼에게 당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남성의 재력을 바로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자 구애 신호입니다. 이를 악용해 여성을 속이려는 남성들, 남성을 이용하려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에게 벤틀리 벤테이가를 선물했던 전청조가 떠오릅니다.
마지막으로 여자를 사귀고 싶어 포르쉐를 샀던 그 남성이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났기를,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포르쉐를 구입했기를, 포르쉐의 겉모습이 아닌 진짜 매력을 즐기고 있기를, 포르쉐가 아닌 자신을 좋아하는 여성과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더난출판)
-그래서 마케팅에도 심리학이 필요합니다 (진변석·김종선 지음, 팬덤북스)
-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리더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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