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추상미술의 길 뚫어낸 ‘영원한 젊은이’ 박서보
‘국전’에 반기…거침없는 붓놀림
“한국 앵포르멜 시작” 근대에 종언
연필 쓴 ‘묘법’ 연작, 세계적 명성
타계 직전까지 열정적 작업 활동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익숙한 그림이 보인다. ‘회화 No.1-57’이다. 냉기가 몸을 덮친다. 찬찬히 살폈다. 흘러넘치는 마티에르다. 그 무게가 서서히 침범해 온다. 짙은 무채색들이 그 위에 겹쳐 있다. 내면 깊숙한 어두움을 기어이 마주할 거 같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뱉어내고 싶은 걸까. 보는 이의 마음을 헤집는다.
1958년의 화단은 소란했다. “현대의 소음을 보여줬다” “유령처럼 번득인다” “한국 앵포르멜(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의 시작”이라며 평론가들은 신이 났다. 변화에는 아우성이 존재한다. 1958년 제3회 현대전에서 박서보는 ‘회화 No.1-57’을 비롯해 7점을 출품했다. 단번에 주연을 꿰찼다. 그는 알았을까. 평생의 길이 영화롭되 힘겨우며 꽃길과 가시밭길을 동시에 걸어야 함을.
“봉건의 아성인 국전에 반기를.” 투사의 외침이 아니다. 젊은 박서보의 선언이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대한 저항을 공식화했다. 1956년의 일이다. 망설임의 흔적은 없다. 국전에 반대한다는 대자보를 내걸고 동료들과 4인전을 열었다. 이토록 도발적인 데뷔전이라니. 1950년대 국전의 입상작들은 뻔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주도의 관전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의 성향을 답습했다. 곱게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여인, 초가집의 풍경과 정물화 등이 다수였다. 당연하다. 시대적 관행은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지겹도록 끈질기게. 많은 이들은 그러려니 한다. 박서보는 참을 수 없었다.
20대 청년의 울분과 출발
‘회화 No.1-57’에는 삐딱한 20대의 청년이 있다. 다시 보니 화가 서려 있다. 그 속내를 파고들었다. 칼질이 연상되는 붓놀림과 헐벗은 듯한 바탕에서 쏟아내지 못한 울분이 느껴진다. 뒤엉켜 놓여 있는 색들이 지지 않겠다는 듯 삐쭉하다. 낡음을 걷어차겠다는 의지를 본다. 통했다.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움틀락 말락 눈치를 보던 추상미술의 길이 뚫렸다. 현대를 열어젖히는 호기로운 출발이었다.
박서보는 1950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 중 서양화과로 전과했다. 피난지 부산에 세워진 전시학교에 지도교수들은 오지 않았다. 서양화를 가르치는 김환기를 따라갔다. 미군이 버린 전투식량인 레이션 박스를 주워, 배운 적 없는 유화를 그렸다. 선생은 “뛰어나다. 박군은 천재네”라며 추켜세웠다. 열정에 불이 붙었다. 박서보는 절박한 날들이 와도 기죽지 않았다. 직진하는 예술가의 초상은 진즉에 완성되었다.
“두고 보시오. 훗날 내가 대가가 됩니다.” 스물아홉 박서보는 미국인들이 세운 민간원조기관인 아시아재단 직원에게 외쳤다. 1961년 프랑스 파리 세계청년화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지명돼 후원을 요청하러 간 자리였다. ‘젊은 작가는 안 된다’는 거절에 쏘아붙였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쉬이 초라해지지 않는 법이다. 결국 파리라는 세계 무대에 서고야 만다. 프랑스 시절 박서보는 쓰레기통을 뒤져 기계 부속과 버려진 속옷 등을 구해 작업했다. 결핍은 무기였고 노력은 혈기 찬 발언보다 참됐다. 1960년대 ‘원형질’ 시리즈에서 정체 모를 음울함과 절박함이 떠다닌다. 1970년대 ‘유전질’과 ‘허상’ 연작 속 얼굴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인간을 보면 덜커덕 숨이 막힌다. 해석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고급스러운 작가주의 영화 같다. 다음 실험은 무엇일까.
“에고가 강한 저돌형이다.” 1959년 일간지에 실린 그에 대한 평가다. 박서보의 평생 벗이었던 김창열 화백이 썼다. “기존의 회화 및 소재의 틀을 깬다.” 앵포르멜 미술 특성 중 한 부분이다. 1957년 ‘회화 No.1-57’과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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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살 떨리는 손으로도
2023년 10월 92살의 박서보가 세상을 떠났다. 약 한달 뒤에 부산행 기차를 탔다. 그의 유작전이 되어버린 개인전을 보러 갔다. 조현화랑 2층 전시실에서 한 면 중앙에 걸린 작품에 시선이 간다. ‘묘법’ 시리즈 중 연필로 그린 ‘Ecriture No.190403’(2019)이다.
어느 기억은 망각을 거절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누군가의 사소한 미움은 따돌림으로 이어졌다. 억지로 흐르던 시간에 갇혀 버렸다. 하교를 같이 한 사람이 있다. 성당에 같이 다니던 다른 반 친구였다. 교실 뒷문에서 나를 기다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텅 빈 운동장 구석에 쪼그려 앉는다. 내가 나뭇가지를 든다. 지그재그로 흙을 긋고 또 긋는다. 굳게 닫혔던 입술이 움직였다. 쏟아내거나 눈물짓는다. 친구는 말이 없다. 그러다 함께 나뭇가지를 든다. 우리는 긋고 흙으로 덮고 또 그었다. 목적 없이. 그 때의 나를 구원한 장면이다.
고개를 들어 작품을 본다. 직접 빗금을 긋는다. 가장 윗줄에 12살의 상처를 채운다. 다음 줄에 아픔을 가린다. 그 밑줄에 한번 더 지워낸다. 끝줄에 좋은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칠한다. 숨이 쉬어진다.
박서보는 1973년 도쿄 무라마쓰화랑에서 ‘묘법’을 처음 선보인다. 글자 그대로 선을 긋는 작업이다. 연필에서 한지로 재료를 달리하고 후기에는 자연의 색채를 드러내며 기법은 다채로워졌다. 이후 박서보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 현대미술의 주연에 더해 세계적 셀레브리티라는 명함을 새겼다. 1980년대 300만원에도 안 팔리던 묘법은 2017년 14억원이 넘는 경매가를 기록한다. 그의 나이 여든을 넘어서다.
“목적이 없다. 수행할 뿐이다.” 박서보가 밝힌 묘법에 대한 정의다. 그는 명연설가였다.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다. 반세기를 이어온 묘법에 대한 설명은 예외였다. 캔버스에 밑칠을 한다. 바닥에 눕힌다. 채 마르지 않은 표면에 연필로 선을 긋는다. 그은 선 위에 도료를 칠한다. 바퀴 달린 작업대에 올라가 무릎을 꿇는다. 엎드려 몇시간씩 쉬지도 않고 반복한다. “흉내를 낼 수도 없다.” 아내 윤명숙은 평생을 보아도 그가 놀랍다.
오차 없이 배열된 간격에서 완벽을 향하는 욕망을 본다. 그는 잠재우려 했을까, 분출하고 싶었을까. 일흔이 넘어서도 10시간을 작업하다 응급실에 실려 가고 생의 끝에서도 6시간을 채웠던 그다. 작가로서 자신을 대하는 엄격함이다.
3년 전 여름, 서울 연희동 박서보재단을 방문했다.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타카(고정용 핀을 박는 도구)가 어디 있니?”라고 말한다. 작업 중이었다. 그의 나이 아흔이던 때다. 붓을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랑곳없이 캔버스 위를 움직인다. 가슴이 일렁였다. 찾아냈다. ‘묘법’이 품은 우아함의 밀도가 그토록 짙은 이유를. 정직한 신실함을 목격한, 잊히지 않는 날이다.
기질과 감정은 밀려온다. 우리는 행동을 선택할 뿐이다. 박서보는 스스로 한국 현대미술의 주인공이 되었다. 젊은 시절 형체를 부수고 뱉어내며 근대에 종언을 고했다. 죽기 직전까지 비우고 또 지우며 현대를 살았다. 궁금하다. 그가 이제는 쉬고 있으려나. 소리가 들린다. “나 박서보야. 여기에서도 할 일 많아.” 새해를 맞아 무채색의 연필을 여러 개 샀다. 내 삶의 주연 자리를 꿰차리라. 선을 그으며.
미술 칼럼니스트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만 있고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이 좋았기에 주저 없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근대미술에 애정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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