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터치] '북판 이스깐제르' 러-우크라 전장서 검증했나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북한이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단거리 미사일(SRBM)을 러시아에 지원해 실전 검증한 정황이 포착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 미사일은 러시아가 2006년 실전 배치한 이스칸데르 지대지 미사일과 외형이 거의 같아 북한이 이를 복제해 개발했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자국에서 유출된 기술로 다른 국가가 개발한 미사일을 지원받아 공격 무기로 사용한 셈이다. 미국 다음으로 무기 강국으로 꼽히는 러시아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지금 우크라이나와의 전황을 볼 때 체면을 따질 일이 아닌 듯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 의지로 전쟁 양상이 장기화하면서 군수물자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SRBM 지원 가능성은 두 달 전 한국 군 당국이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 관계자는 러시아에 지원될 무기·장비류로 122mm 방사포탄과 152mm 포탄, T계열 전차 포탄, 방사포와 야포, 소총 및 기관총, 박격포, 휴대용 대공미사일 및 대전차미사일, SRBM 등을 꼽았다.
특히 SRBM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첩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정확한 첩보 출처는 밝히지 않았으나 휴민트(인적정보) 또는 시긴트(신호정보) 등이 모두 동원됐다는 후문이다.
군 관계자의 언급 며칠 후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한 방송에 출연해 "대공 미사일, 대전차 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보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가 지난 4일(현지시간) 북한이 최근 러시아에 탄도미사일을 제공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와 관련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우리가 입수한 정보는 북한이 최근 러시아에 탄도 미사일 발사대들과 수십발의 탄도 미사일을 제공했음을 보여준다"고 확인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30일 최소 1발의 북한산 탄도미사일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지역에 발사했으며, 올해 들어 지난 2일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야간공습 등에 여러 발을 사용했다고 미 정부는 설명했다. 한국군과 미군은 정보공유에 따라 이 미사일을 KN-23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발사된 SRBM 사거리 도표와 함께 KN-23 미사일 발사 장면 사진까지 공개했다. 두 달 전 한국군이 공개 언급한 것을 미국 정부가 사실로 확인해준 셈이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의 첩보 수집 능력도 덩달아 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그간 열차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15차례 이상 쏘았던 KN-23을 실제 전장에서 검증해보는 기회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동해상에 지정한 탄착지점으로 시험 발사했던 KN-23을 전장에서 사용함에 따라 발사차량의 기동력이나 탄두 파괴력, 정밀도 등을 테스트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KN-23은 2018년 2월 8일 북한군 창설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군과 전문가들은 발사차량과 탑재된 미사일이 러시아의 이스칸데르와 너무 닮아 북한이 미사일 도면을 해킹했거나 러시아 기술자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의심했다. 아울러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이름을 붙였다.
북한은 이듬해 5월 4일 KN-23을 처음 시험 발사했고 200여㎞를 비행했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최대 800㎞에 이른다. 미국 정부는 사거리를 900㎞로 추정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매체도 KN-23을 '북판 이스깐제르'로 지칭한 적이 있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TV'는 2021년 10월 북한의 무기박람회 '자위-2021' 개최를 보도하면서 "국방발전전람회에는 북판 이스깐제르에 이르기까지 신형무기들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고 소개했다.
이 TV는 "남조선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이런 내용을 보도했는데, 북한에서는 '북한'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북판'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전술핵탄두 '화산-31'을 KN-23에도 탑재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군과 정보 당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KN-23을 지원한 것으로 확신함에 따라 향후 러시아로부터 받을 수 있는 무기·장비류, 군사기술 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과 위성·핵 관련 기술, 미그-29 전투기 또는 관련 부품, 방공시스템, 노획한 서방 무기 및 장비 등이 반대급부로 거론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7일 "북한과 러시아의 상호 인적 교류, 선박과 항공기, 기차 등의 입·출입 동향 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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