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한동훈 체제가 증오·적대로 가득찬 이유

성한용 기자 2024. 1. 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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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14
윤 “이념 기반 패거리” 비판하고
한 “운동권 정치 청산” 열 올려
‘민주화 운동’에 콤플렉스 가능성
보수 쪽도 걱정…‘조선’은 맞장구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세종/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를 오래 했지만 본래 이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치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이념을 극우 뉴라이트 쪽으로 맞춘 것 같습니다.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권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들고나왔습니다.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화물연대, 건설노조, 민주노총,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 사교육 시장과 결탁한 교육관료 등을 차례차례 카르텔로 낙인찍었습니다. 2023년 7월3일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준 뒤 오찬을 함께 하며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라고 선언하고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어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 윤석열 대통령의 표적으로 떠올랐습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8·15 경축사)

과유불급이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극우 발언과 행보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서 사달이 났습니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권 내부의 당혹감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최훈 중앙일보 주필이 2023년 9월18일치 신문에 “‘양날의 칼’ 대통령의 이념 전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칼럼 마지막 부분에 윤석열 대통령의 직접 발언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념 발언은 다 잘 먹고 잘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뚜렷해지지 않으면 잘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국가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한번 명확히 하고 가자는 게 의도였다.”

이념보다 민생이 우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극우 이념 행보를 멈추겠다는 뜻이었습니다.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충격도 컸던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17일 국민통합위원회 행사에 참석해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10월18일에는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발언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야당에 대한 비난 수위도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고 ‘대통령이 달라졌어요’라는 글을 통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2024년 신년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는 출범한 이후 일관되게 이권 카르텔, 정부 보조금 부정 사용, 특정 산업의 독과점 폐해 등 부정과 불법을 혁파해왔습니다.”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습니다.”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과 싸우지 않고는 진정 국민을 위한 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를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은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 머릿속에 존재하던 ‘이권 카르텔’과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을 하나로 합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보여줬던 반성과 성찰은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속된 표현으로 ‘말짱 도루묵’이라고 합니다. 색깔론 병이 다시 도진 것입니다.

2022년 6월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스페인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특검·명품백 수세 몰리자…

윤 대통령의 색깔론 회귀는 최근 정치 상황과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와 ‘김건희 특검법’ 국회 의결 등으로 민심이 악화하자, 자신의 아바타로 불리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앉혀 여당을 전투 체제로 재편하고, 윤 대통령 자신도 야당과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려는 것 같습니다. 한동훈 위원장도 지난 연말 비대위원장 취임 연설에서 놀랄 만한 내용의 이념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 당을 숙주 삼아 수십년간 386이 486, 586, 686 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3년 12월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한 위원장의 발언은 독기와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민주당’과 ‘이재명’과 ‘운동권’에 대한 증오와 적대가 이글거립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이념은 같습니다. ‘반민주당’, ‘반이재명, ‘반운동권’입니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것일까요? 민주당, 이재명, 운동권을 왜 미워하는 것일까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적대시하는 것은 그나마 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당이고 야당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운동권을 증오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민주화 운동할 때 고시 공부하던

저는 대한민국에서 출세한 엘리트들이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갖는 일종의 콤플렉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콤플렉스는 무의식에 숨어 있는 감정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 마음속의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힘의 존재를 의미하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이라고 정의합니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에 맞서 싸우지 않았거나 결탁했던 사람들은 운동권 인사들에 대해 부채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채감과 죄의식이 성공한 엘리트의 우월감과 결합하면 콤플렉스가 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극우 발언에 대해 이른바 보수 신문 논객들도 걱정이 늘고 있습니다. 천광암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1월1일치 신문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썼습니다.

“한 위원장은 중도 확장을 위한 경제·민생 살리기보다는 지지층 다지기를 위한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에만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는 ‘숙주’와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면서까지 386 운동권에 대한 거친 전의를 드러내 보였다.”

“한 위원장은 소설 ‘모비딕’을 자신의 최고 애독서로 꼽는다. 소설은 괴물고래 ‘모비딕’에게 한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의 광기 어린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적인 복수에 모든 것을 건 에이허브 선장은 결국 모비딕의 눈에 작살을 꽂아 넣는다. 그러나 그 대가는 자신뿐 아니라 ‘피쿼드’호의 선원 전원(소설 속 화자만 제외)의 죽음이다.”

김현기 중앙일보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은 1월4일치 신문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썼습니다.

“1일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는 실망스러웠다. 여당, 야당이야 늘 치고받고 싸우는 게 일이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적어도 대통령은 2024년 대한민국의 비전의 일면이라도 제시해줘야 했다. 아무리 여러 번 신년사를 읽어봐도 저출산 대책,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같은 핵심 과제의 알맹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여러 곳에 등장하는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 척결’이란 표현만이 머리에 남는다.”

 전두환 찬양 ‘조선’, 운동권 비판하는 이유

그러나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1월2일치 신문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썼습니다.

“운동권 정치는 이제 그 기능과 수명을 다했다. 그들은 너무 오래 특권에 심취했고 유아독존에 중독됐다. 그들은 좌파의 본연인 진보·사회주의를 무시하고 권력에만 기승하려 했다. 그 청산의 칼자루를 쥐고 한국 정치의 신주류로 등장한 것이 윤석열, 한동훈이 주축이 되는 이른바 ‘검찰’이다. 거기에는 과거 운동권이 정권을 장악했던 것처럼 어떤 시대적 당위가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운동권 특권을 교정할 수 있는 적임자는 사정 기능을 가진 검찰일 수밖에 없다.”

어떻습니까? 김대중 칼럼니스트의 논리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을 ‘역사의 필연’으로 평가하고 찬양했던 당시 언론의 논리를 빼다 박았습니다. 그는 사회부장이던 1980년 5·18 1주일 뒤 광주에 출장을 가서 “무정부 상태 광주”라는 르포 기사를 썼던 당사자입니다. 그 당시 언론의 흑역사를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되는 사례로 조선일보 1980년 8월23일치 3면 ‘인간 전두환’ 기사도 있습니다. 이런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인맥 찾지 않아 주위에 사람 많이 몰려”
“운동이면 못하는 것 없고 생도 시절엔 축구부 주장”
“‘사에 앞서 공…나보다 국가’ 앞세워”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회피 안 해”

어떻습니까? 조선일보는 전두환 정권 시절 권언유착으로 사세를 키웠습니다. 반면에 운동권은 전두환 독재에 맞서 싸웠습니다. 조선일보가 운동권 비난에 유별나게 열을 올리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조선일보의 주장을 따라가면 실패한다고 확신합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충고와 조언을 받아들여야 그나마 성공의 길이 열린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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