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의 무역적자' 韓의 탈중·입미, 그리고 동반자 [차이나는 중국]

김재현 전문위원 2024. 1. 7.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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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1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걸어가고 있다. 2023.11.16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지난해 대중 무역수지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언제나 흑자만 기록하는 줄 알았던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한 건 놀라운 일이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국제 분업구조에 편입된 이후, 한국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이 완제품을 생산·수출하는 구조에서 한국은 막대한 대중 무역흑자를 누려왔다. 그런데 이 분업구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중 교역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에서 1위를 꿰찼던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1% 미만으로 하락했고 한때 10%를 넘나들던 현대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대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소비재 브랜드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무의미한 수준으로 하락한 데 이어 이제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제품 등 중간재에서도 대중 수출이 줄고 있다.

대신 대미 수출이 급증하면서 처음으로 월 기준 11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해외 직접투자도 중국 대신 미국이 대세가 됐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 중 대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대만에서도 2020년 이후 '탈중입미(脫中入美)'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인데, 한국 역시 똑같은 상황이다.

대중 무역수지는 180억달러 적자…대미 무역수지는 445억달러 흑자
대중 무역흑자는 2013년 628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점차 줄기 시작한 대중 무역흑자는 2019년 이후 200억달러대로 주저앉더니 2022년에는 12억달러로 급감했으며 지난해 18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23년 동안 총 6873억달러를 기록했던 대중 무역흑자가 적자로 전환한 것이다.

막대한 원유 수입과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를 메우고도 남아 무역흑자국 위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한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 전환하면서 지난해 한국은 무역적자 100억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에도 한국은 대중 교역에서 매년 300억~40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기록하며 위기에서 누구보다 먼저 빠져나왔는데, 앞으로는 다른 성장 엔진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수출이 늘어난 건 다행스럽다. 지난 12월 대미 수출은 사상 최초로 110억달러를 넘어서며 월간 기준으로 최대 수출국이 20년 만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교체됐다. 전기차 등 자동차 수출 급증이 대미 수출의 효자 역할을 하면서 대미 무역흑자는 2022년 280억달러에서 2023년 445억달러로 급증했다.

중국 산업구조 고도화로 인한 제조업 경쟁력 향상과 중간재 자급률 제고가 대중 무역수지 적자 전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만,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글로벌 교역 환경이 변화한 영향도 크다.

특히 대중 무역적자는 2차전지 영향이 상당하다. 지난 10월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중국산 전기차용 배터리 수입금액은 44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4.6% 늘었다. 국내 2차전지업체들이 지난해 1~10월 중국에서 사온 수산화리튬 수입금액도 42억6700만달러에 달한다.

배터리와 수산화리튬 두 품목에서만 한국이 100억달러 이상의 대중 무역적자를 봤다는 얘기다. 대신 미국의 IRA에 대응해 미국 등 북미에 진출한 LG에너지솔루션 등 2차전지 업체들이 현지 공장 가동을 본격화하면서 양극재 등 2차전지 소재 수출이 급증했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고 배터리 부품·소재 요건을 충족하는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급증하는 한국의 대미 투자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AFPBBNews=뉴스1
2018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기술경쟁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면서 미국은 대중 첨단 기술 제재를 강화하고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미국 현지 생산을 장려하고 있다. 해당 정책은 한국의 대미 투자, 더 나아가 대중 투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2년 7월 미국 정부가 반도체지원법을 통과시키며 미국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게 527억 달러(68조5000억원)의 보조금을 주겠다고 밝힌 이후,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대신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5%, 범용 반도체의 경우 10% 이상 확장할 경우 보조금을 반환하는 가드레일 규정이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 신규 투자는 사실상 막혔다고 볼 수 있다.

2차전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했듯이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지어야 한다.

이 같은 영향으로 2020년 이후 한국의 대미 투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반면, 대중 투자는 제자리 걸음이다. 특히 지난해 1~9월 한국의 대미 투자가 217억달러를 기록한 반면 대중 투자는 14억6000만달러로 급감했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3분기 해외직접투자 동향'은 "이차전지 시장 선점과 공급망 강화를 위한 북미·아세안 지역 관련 산업투자는 지속되는 양상이며, 대(對)중국 투자는 위축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의 '탈중입미(脫中入美)' 가속화
재밌는 건 한국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국과 밀접한 무역관계를 유지했던 대만 역시 '탈중입미(脫中入美)'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만의 해외 투자 중 대중 투자 비중은 지난해 1~11월 11.5%에 그쳤다. 중국-대만 간 자유무역협정(FTA)격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체결된 2010년 83.8%에 달했던 대중 투자 비중이 2018년 30%대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10%대 초반으로 급락한 것이다.

대신 지난해 1~11월 대만의 대미투자는 96억달러로 전체 해외 투자의 37%를 차지했다. 지난해 대만의 대미 투자는 대중 투자의 3배에 달할 뿐 아니라 1993년 대만이 대중 투자를 허용한 이래 처음으로 대미 투자가 대중 투자를 앞섰다. 이 역시 반도체지원법으로 인한 TSMC의 미국 애리조나주 파운드리 공장 건설 영향이 크다.

대만의 대미 교역도 급증했다. 대만의 대미 수출금액은 2018년 395억달러에서 2022년 751억달러로 급증하면서 이 해 297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대만의 탈중입미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탈중국 성향의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와 친중 성향인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지만,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중 투자가 당장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 대만 싱크탱크 대만경제연구원의 쑨밍더 주임은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한 대만의 대중 투자는 계속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1년 WTO에 가입하며 중국이 국제 분업구조에 편입한 이래 대중 교역에서 가장 큰 수혜를 누렸던 한국과 대만의 '탈중입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건 이 추세가 구조적이며 장기적임을 의미한다. 탈중입미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향후 한국 제조업과 무역이 가야 할 길을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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