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의 배려를 '따돌림'으로 생각…갑자기 흉기 휘두른 50대

[사건의재구성]휴직 권고·보직 변경 논의 알고 따지다 범행
1심 징역 4년→항소심 '피해자 합의' 징역 3년에 집유 5년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전남 광양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A씨(54)는 직장 상사인 B씨(58)에게 수차례 면담을 신청했다.

A씨는 "왜 내 보직을 변경해 옭아매려고 하느냐. 왜 나를 따돌리느냐"며 1시간 동안 B씨에게 따져물었다.

B씨는 "보직 변경은 너를 위한 일이다. 따돌린 적이 없다"며 그를 다독였다.

A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협력업체 사무실에서 담배 1개비를 훔쳐 피웠는데 구속이 될 것 같다. 이 일로 회사에서 처벌 받으면 처자식의 생계가 걱정된다. 우리 딸, 아들은 누가 책임지냐"며 또다시 면담을 신청했다.

피해자는 "네가 아들, 딸을 챙겨야지"라며 거듭 A씨를 다독였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갑자기 공업용 칼을 들고 B씨에게 달려들었다.

"살려달라"는 피해자의 애원에도 멈추지 않은 그의 범행은 현장에 있던 같은 부서 직원들에 의해 중단됐다.

A씨는 현장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게 체포됐다.

중상을 입은 B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지난해 3월29일 오후 4시10분쯤 전남 광양의 한 기업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A씨는 사건이 있기 약 2년 전부터 수면장애와 불안증세 등을 보였다. 이런 그의 사정을 알던 직장상사 B씨는 그에게 힘든 업무를 시키지 않고 배려했다.

상사의 배려를 따돌림으로 받아들인 A씨의 불만과 이상행동은 깊어져만 갔다.

결국 B씨는 간부회의에서 A씨에 대한 휴직 권고나 보직 변경 등을 논의했고, 이를 알게 된 A씨는 면담을 거듭 요청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살인범죄는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로, 피고인의 범행이 비록 미수에 그쳤다고 해도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2심을 맡은 광주고법은 원심을 파기하고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직장상사인 피해자가 자신을 따돌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중요 신체 부위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했다"며 "범행의 내용, 방법, 상해의 정도에 비춰보면 죄질과 범정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은 회사 생활에 힘들어하며 진료를 받아오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점,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가족과 여러 직장동료 등이 선처를 탄원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견고하고,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피고인이 질환에 대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원심의 형은 무거워 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