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이 공탁만"...꼼수 터준 공탁법에 "피해자 의견 반영해야"

천현정 기자, 조준영 기자 2024. 1. 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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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부터 형사공탁특례가 시행되며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해도 공탁할 수 있게 됐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형사공탁금 신청 건수는 공탁특례가 시행된 2022년 12월 1486건에서 지난해 6월 2369건으로 약 60%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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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강남 스쿨존 사망 사고'의 가해자 A씨는 지난해 11월 항소심 선고를 11일 앞두고 법원에 1억5000만원을 기습 공탁했다. 피해 아동의 유족은 "단 한 푼도 받을 생각이 없고 오로지 엄벌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음에도 선고 직전 무작정 거액을 공탁했다"며 분노했다. A씨는 1심에서도 선고 직전 3억5000만원을 공탁했고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2020년 경기도의 한 소규모 교회에서 벌어진 '40대 목사의 자매 그루밍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가 2022년 시작되고, 지난해 목사 B씨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피해 자매는 여러 차례 합의 의사가 없다고 밝혔음에도 B씨 측에서 일방적으로 피해자 계좌에 2000만원을 보냈다. 이를 거절하며 돈을 돌려줬지만 B씨는 선고 하루 전 이 돈을 법원에 공탁했다. 반성 없는 B씨의 기습 공탁 때문에 피해 자매는 재판 과정에서도 고통에 시달렸다.

2022년 12월부터 형사공탁특례가 시행되며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해도 공탁할 수 있게 됐다. 양형기준상 공탁은 감경요소에 포함된다. 절차가 간단해진데다 형의 감경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피해자가 공탁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없도록 선고 직전에 기습공탁하는 꼼수가 등장한 이유다. 현행 공탁법에서 공탁의 시기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형사공탁특례에 따르면 피해자에게 즉각적으로 공탁사실이 통지 되지 않고 재판부가 피해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도 명시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사실상 꼼수공탁이 성행할 수 있는 판이 깔린 것이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형사공탁금 신청 건수는 공탁특례가 시행된 2022년 12월 1486건에서 지난해 6월 2369건으로 약 60% 증가했다. 특히 형사공탁과 관련된 1·2심 확정판결 988건(2022년 12월~2023년 10월)을 분석한 KBS 보도에 따르면 선고 2주 이내에 이뤄진 공탁이 558건(56.4%)이고 이 중 선고 3일 전에 이뤄진 공탁도 130건(13%)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특례법안 논의 과정에서도 공탁제도가 악용될 우려가 나왔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1월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나 아니면 피해자와의 어떠한 금전적 사과 노력 없이 모든 사건에서 사건번호만 쓰는 식으로 공탁해서 취지가 변질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기습공탁 같은 꼼수 사례를 막으려면 피해자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9월 "형사공탁은 해당 형사사건의 변론 종결일 14일 전까지 가능하도록 개정하자"는 개정안(설훈 발의)이 대표적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신진희 변호사는 "기습공탁의 문제는 피해자의 (공탁) 인지 시점이 판결 선고 이후가 돼버리는 상황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게 된다"며 "(설훈 의원안의 경우) 피고인이 최소 2주 전에 공탁해야 하니 이 정도면 피해자가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벌게 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영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해당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형사공탁 기간을 제한하고 있을 뿐 법원이 공탁에 관해 피해자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등의 적극적은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법원이 형사공탁에 대한 피해자 의견을 청취하도록 법률에 명시하는 등의 보완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명화 법률사무소 이채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합의를 안 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혔을 때 형사공탁이 진행된다"며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서 얼마나 사과를 하고 노력했는지는 피해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위원도 "반성의 태도와 함께 공탁이 있어야지 반성없이 양형에 유리하기 위해서만 공탁을 활용하면 안 된다"며 "피고인이 공탁을 했어도 밖에서는 범행을 부인하고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의견을 꼭 들어보고 재판부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현정 기자 1000chyunj@mt.co.kr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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