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를 지배한 ‘이 대학’ 도련님들…나라 망쳐놓고도 당당했다 [Books]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1. 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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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초엘리트
사이먼 쿠퍼 지음, 김양욱·최형우 옮김, 글항아리 펴냄
영국 옥스퍼드대의 고위층 사교모임인 벌링던 클럽의 1987년 사진을 유화로 다시 그린 ‘1987년 클래스’. 지난 2007년 유출됐다가 저작권을 이유로 배포가 금지됐던 1987년 벌링던 클럽 사진을 BBC방송의 의뢰로 화가 로나 마슨이 유화로 그린 작품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뒷줄 왼쪽 두 번째) 전 총리와 보리스 존슨 전 총리(앞줄 왼쪽 세 번째)가 함께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 클럽이 1980년대 신입 회원들을 받을 때 통과의례로 하던 행동들을 보도했다. 매춘 여성을 동석시키거나 물건들을 마구 부수는 극단적 파괴 행태가 지적됐다. 일부 회원들은 서민층 비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사진 출처=BBC]
권력과 카르텔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카르텔은 권력을 만들어내고 권력은 이런 카르텔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저마다의 이익 집단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카르텔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엘리트 집단의 카르텔일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과 부를 갖춘 상류층들의 연합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는 전 세계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다.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인 저자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동문인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보수당 대표, 대니얼 해넌 전 영국 보수당 의원, 제이콥 리스모그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 도미닉 커밍스 전 영국 총리실 수석보좌관, 마이클 고브 전 영국 법무부장관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초엘리트 그룹’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영국을 지배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파헤친 르포르타주다. 영국 정치권을 이루는 초엘리트들과의 인터뷰와 인물 분석, 뉴스 보도, 저자의 직접적인 경험을 총망라했다. 영국 보수당의 옥스퍼드대 네트워크를 한 장의 도식으로 나타낸 것도 눈길을 끈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영국 정계 진출의 등용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리시 수낵 영국 총리를 포함해 영국의 역대 총리 57명 가운데 옥스퍼드대 출신은 30명에 달한다. 옥스퍼드대와 함께 ‘옥스브리지’로 불리는 영국 명문대학의 양대산맥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은 14명으로 절반 수준이다. 갈수록 옥스퍼드대의 카르텔은 점점 더 견고해지는 모양새다. 1940년 이후 취임한 총리 17명 중 13명이 옥스퍼드대 출신이었고, 2010년 이후 취임한 총리 5명은 전부 옥스퍼드대 출신이다.

최근에는 옥스퍼드대 안에서도 철학·정치학·경제학(PPE) 전공자들이 새로운 카르텔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프랑스의 엘리트 배출 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에 견줄 만한 옥스퍼드대 PPE가 영국의 정계, 언론계를 휘어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옥스퍼드대는 복수전공 형태인 PPE 프로그램을 1920년 처음 선보였는데 엘리트층을 꿈꾸는 많은 학생들이 좌우에 관계없이 정계 요직에 진출한 영향이 크다. 수낵 총리는 물론 직전에 영국 총리를 지냈던 리즈 트러스 전 총리도 옥스퍼드대 PEE 출신이다.

3년의 학부 과정 동안 세 가지 전공을 한꺼번에 수료하는 PPE는 만능 정치인을 길러내기 위한 옥스퍼드대의 관료 양성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일주일에 겨우 20시간만 공부에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놀거나 사교모임을 통해 인맥을 쌓는 데 썼다. 실제로 옥스퍼드대 출신들은 선거와 토론에서 얕은 지식을 기반한 순발력과 신뢰감을 주는 계산된 저음의 목소리, 인신공격성 농담으로 유권자들을 홀리는 데 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 [사진 출처=픽사베이]
영국의 대내외적 환경에 큰 갈등과 위기를 가져온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중심에도 옥스퍼드대의 아성이 있었다. 당초 브렉시트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됐지만 그조차도 또 다른 엘리트 집단이 주도했던 것이다. 옥스퍼드대 졸업생 집단은 브렉시트 운동으로 다른 옥스퍼드대 세력에 반기를 들었다. 저자는 “브렉시트는 옥스퍼드대에서 부화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존슨 전 총리와 함께 옥스퍼드대 출신이자 언론계 거물인 루퍼트 머독 뉴스 코프·폭스 코퍼레이션의 공동 회장이 반(反)엘리트주의자로 가장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영국 국민은 이런 세력 다툼으로 점철된 엘리트들의 브렉시트 운동에 동의했다.

엘리트층의 카르텔은 학창 시절부터,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형성된다. 저자는 옥스퍼드대 출신 초엘리트들의 특권의식과 불편한 이면을 책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드러냈다. 옥스퍼드대 안에서도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것. 일례로 윈스턴 처칠의 손자인 루퍼트 솜스는 학부생이던 당시 기자와 만나 “우리 무리는 사립학교 친구들과 함께 옥스퍼드대에 왔고 대부분 일반 학생들보다 부유하고 유명한 부모님들을 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카르텔과의 전쟁’이 좌우 불문하고 계속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이다.

옥스퍼드 초엘리트.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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