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총도 만들지 못했던 K 방산, 세계 무기 시장 주인공 됐다 [박수찬의 軍]
6.25 전쟁 당시 한국은 군대의 필수품인 소총과 권총조차도 제작하지 못해 미국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다.
그랬던 한국이 지금은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선진국과 경쟁하는 위치로 올라섰다.
한국은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기존 방위산업 강국들이 갑작스런 수요 증가에 대응하지 못하는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한국 방산업계의 수출 규모는 2022년 170억 달러(22조5539억원)까지 급증했다. 호주 장갑차 사업에서 독일을 제치고 수주를 할 정도로 경쟁력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가 계속 이어지게 하려면,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상호운용성 등에서 강점 보인 K방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세계 각국이 가장 많이 찾는 무기는 미국산 제품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세계 분쟁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지만, 무기 판매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안보를 보장받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크다.
우크라이나 지원 과정에서 증명된 미국산 무기의 성능과 신뢰성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전쟁 전까지 미국이 백악관 방공작전에만 썼던 나삼스(NASAMS)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 러시아 순항미사일과 드론 다수를 성공적으로 요격했다. 이후 서방국들은 나삼스를 앞다투어 주문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조달청은 독일과 네덜란드, 루마니아 등의 회원국들이 55억 달러(약 7조2000억원) 규모의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1000기를 유럽에서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패트리엇 생산 시설은 유럽 미사일 제조업제 MBDA와 미국 방산업체 레이시언(RTX) 자회사의 합작 투자로 만들어진다.
루마니아는 최근 미국에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263기와 M1A2 전차 54대 구매 의사를 밝혔다.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언이 생산하는 재블린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군 기갑차량을 대거 파괴한 주역으로서 세계 각국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라트비아는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HIMARS:고기동로켓포병시스템) 판매를 미국에 요청했다. 하이마스는 227㎜ 다연장로켓 6발 또는 에이태킴스 미사일 1발을 탑재한다.
로켓 1발은 축구장 1개 면적, 에이태킴스는 축구장 3~4개 면적을 초토화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하이마스는 러시아군 보급망을 파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무기 생산능력이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첨단 미사일은 물론 전차 등 재래식 무기도 생산 기간을 늘어났지만, 규모는 감소했다.
나삼스 1개 체계와 미사일을 모두 생산하려면 수년이 걸린다. 독일의 경우 냉전 시절 연간 400여대의 전차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50대에 불과하다.
이같은 틈새를 가장 잘 활용한 국가가 한국이다.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하던 한국은 신속하게 무기를 생산, 납품할 능력을 갖췄다.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자 미국산 무기와의 상호운용성도 철저하게 구현했다. 실제로 국산 FA-50 경공격기 조종 경험을 갖고 있으면, F-16을 조종하기도 쉽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K방산의 무기는 미국산 장비를 원하지만, 구매 시기 등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국가에는 좋은 대안이 된다. 폴란드가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을 대량 구매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산 무기와 개념이 유사한 것도 장점이다. 폴란드에 수출한 천무 다연장로켓은 239㎜ 로켓과 사거리 300㎞의 전술지대지미사일을 운용한다. 미군 하이마스나 MLRS와 같은 형태다.
방산수출이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써 방위산업이 주목받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국면이 오랜 기간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한국이 지금까지 주로 수출한 무기는 전차와 자주포 등 지상 분야 재래식 장비가 많다.
냉전 이후 유럽은 재래식 무기 생산능력이 줄어들고, 미사일과 전투기 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무기의 비중을 늘렸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단기간에 급증한 지상 분야 재래식 무기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게 했다. K방산이 파고들 틈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 방산업계도 재래식 장비 개발·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외교관계와 후속군수지원 등을 감안, 역내에서 만들어진 무기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 방산업체 크라우스 마파이 바그만은 레오파르트 전차 계열 중 최신형인 A8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공격력과 방어력, 기동력이 크게 향상된 A8은 체코 등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경제와 안보가 서로 융합되면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큰 국가가 방산수출에서 유리해지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독일은 지난해 128억 달러(16조8000억원) 규모의 방산수출을 기록했고, 미국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무기수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도 방산수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 방산컨설팅회사 제인스의 전망에 따르면, 2022~2031년 세계 함정시장 규모는 9930억 달러(약 1290조원)에 달한다. 이 중에서 수출 가능 시장은 590억 달러(76조7000억원)에 이른다.
최신 전투함을 자체 건조할 기술이 부족한 동남아시아는 함정 수출 가능성이 큰 곳이다.
중국의 팽창에 직면한 동남아는 인도네시아가 자국산 소형 함정을 만드는 등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기술적 한계로 전투함 다수를 수입해야 한다.
지금까진 프랑스 나발 그룹을 비롯한 유럽 업체가 동남아 시장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을 지닌 한국도 원해경비함 등에선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필리핀이 한국에서 호위함과 초계함 및 원해경비함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군용기의 경우 수리온 헬기 수출 추진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헬기는 선진국 업체들이 독점한 고부가가치 장비다.
한국은 육군에서 10여년 동안 운용하며 신뢰성이 축적됐다. 경찰, 해경, 소방청 등에서 쓰이는 관용 수리온 헬기도 다수 있다. 다양한 발주처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
유도무기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분야로서 부가가치가 높다. 특히 대공미사일은 주문이 폭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에서도 하마스와 예멘 후티 반군의 로켓·드론 공격을 이스라엘 방공망이 저지한 것도 방공무기 도입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방산 관련 제도·정책적 전환도 필수다. 국내 방산업체가 개발한 무기는 대부분 소요군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하기 위한 것들이다. 한국군이 일정 이상의 물량을 도입한 뒤 수출에 나섰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수출대상국 요구를 빠르게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고 선진국에 비해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소요제기에서 전력화에 이르는 국방획득체계를 신속하게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획득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면, 전력화됐을 때는 선진국보다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기가 어렵다. 획득주기를 크게 단축하는 정책적 조정이 필수다.
첨단 기술 투자도 늘려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지상 분야 재래식 무기 수요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들이 경쟁 우위에 있는 유도무기와 전투기 등의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대응하려면 민간 차원의 첨단 기술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K방산의 저변을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전쟁 이후에도 이같은 성과를 지속하려면, 새로운 각도에서의 시장 접근법이 요구된다. 패러다임 전환 수준의 혁신적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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