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 창업 열풍’ 美 스탠퍼드대 청년들이 배운 건… “실패하지 않으면 혁신 없다”

팰로앨토(미국)=최지희 기자 2024. 1.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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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大 학생 창업 단체 ‘ASES’ 학생 대표 3인 인터뷰
AI 기반 스타트업에 몰두 중인 스탠퍼드 학생들
“학생들, 항상 ‘자신만의 무언가’ 만들고 있어... 실패는 당연한 것”
“‘작은 것부터, 뭐라도 해보자’는 기업가정신, 삶의 전부”
강력한 네트워크·실리콘밸리 중심 요인도 창업 문화 촉진
(왼쪽부터) 제이스턴 맥클루어(21·생화학 전공) ASES 공동 부회장, 쇼리야 신하(22·교육·심볼릭 시스템 전공) ASES 공동 부회장, 조 테이(22·컴퓨터 공학 전공) ASES 공동 회장./팰로앨토=최지희 기자
“의사가 돼 일생동안 열심히 한다면 수만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제가 새로운 유전자 치료법이나 이를 설계하는 새 방법을 개발하면 전 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제 삶을 걸고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대표적인 학생 창업 단체 ASES(Association of Standford’s Entrepreneurship Society·스탠퍼드 기업가정신 협회) 공동 부회장 제이스턴 맥클루어(21)는 지난달 4일(현지시각) 캠퍼스에서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항상 의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바이오테크(생명공학)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어떻게 생물학 연구를 가속화하고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을지 동료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 요람 실리콘밸리와 맞닿아 있는 스탠퍼드대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 대학 중 가장 많은 창업자를 배출했다. 작년 기준 전체 학부생의 약 6%인 472명이 벤처 창업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매년 ASES를 거쳐 간 학생들의 창업 비율이 높다. 단체가 설립된 1998년 이후 배출된 ASES 스탠퍼드 회원 2750여명 중 약 10%가 창업가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Y) 콤비네이터 회장 게리 탄도 이곳의 창립 멤버다.

이들 단체를 비롯해 최근 스탠퍼드대에서 가장 주목 받는 분야는 단연 AI다. 맥클루어는 “스탠퍼드 학생들은 현재 AI와 AI 기반 스타트업에 몰두하고 있다”며 “많은 학생은 특히 초기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적용해 산업 분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의 매력은 개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동시에 사용 사례를 비교적 찾기 쉽다는 데 있다”며 “스탠퍼드 인공지능 연구소는 AI 분야의 세계적인 리더이기도 해, 스탠퍼드는 AI 스타트업을 운영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라고 했다. 캠퍼스 안내판 곳곳에선 학생들이 만든 AI 스타트업과 제품을 광고하는 전단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만난 ASES 학부생 3명은 모두 AI를 활용해 스타트업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조 테이(22·컴퓨터 공학 전공) ASES 공동 회장과 쇼리야 신하(22·교육·심볼릭 시스템 전공) 공동 부회장은 에듀테크 AI 스타트업을 운영 중이다. 생화학 전공에 컴퓨터 과학을 부전공하는 맥클루어는 동아리 동료와 스타트업을 세우고 생물학자를 위한 AI 기반 조직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창업’ ‘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청년들은 2년 새 “기업가정신은 내 정체성의 핵심이 됐다”고 했다.

실패를 당연시하는 이곳의 문화는 학생들의 도전을 촉진했다. 호주 멜버른 출신 유학생 테이는 “내가 살던 곳에선 독특한 걸 시도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하곤 했다”며 “여기선 거의 모두가 새로운 것에 천착하고, 그러다 실패하는 건 너무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도 말했잖아요, 충분히 실패하지 않으면 혁신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요. 여기선 그 누구도 실패했다고 ‘루저’라고 수근덕대지 않아요. 실패하지 않으면 개선도 없지 않나요?” 다음은 이들과의 일문일답.

–각자 맡고 있는 스타트업과 향후 계획을 소개해달라.

테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 지난 여름 신하 ASES 공동 부회장과 에듀테크 AI 스타트업 셰르파를 세우고 제품을 내놨다. AI의 일상화로 교육 현장에서 부정행위는 늘고 있는데 AI 탐지기로도 적발이 어렵다. 해결책으로 언급되는 건 구술 시험을 늘리는 건데, 한정된 교사가 학생에게 1대1로 시간을 할애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대화형 에이전트를 구축했다. AI가 학생의 이해도를 측정하고, 교사에게 학생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현재 12개 이상의 학교에 우리 제품이 쓰이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AI 시대에, 낡은 시스템에 머물러 있는 교육을 개혁하는 데 힘을 보태는 거다.”

맥클루어 “과학과 기업가정신은 자연스러운 파트너라고 믿는다. 최근 스탠퍼드 AI 연구소에서 일하는 ASES 공동 회장 샬럿과 ‘카본카피 테크놀러지’라는 첫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최종 목표는 치료법이나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스타트업을 이끄는 것이다.”

–AI 외에 학생들이 주목하고 있는 창업 분야가 있나.

맥클루어 “스탠퍼드 학부생들은 소셜미디어 스타트업에도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학생들은 항상 서로 소통하고 연결될 방법을 새롭게 찾으려고 해, 소셜미디어 프로젝트가 많이 생기고 있다. 또 ASES 대학원생 회원들은 컴퓨터공학, 엔지니어링, 생명공학 분야의 딥테크 스타트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어느새 기업가정신이 삶의 전부가 됐다고 했는데, 기업가정신이란 무엇이라고 보나.

맥클루어 “기업가정신은 거창하고 화려한 개념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책임지는 주인의식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스탠퍼드에 와서 배웠다. 스타트업에 국한되지 않고,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신하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뭐라도 해보자’가 바로 기업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가정신이 대중화되면서 이 개념이 종종 재무 전망 등 외형적인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기업가정신은 규모가 어떻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와 책임감을 뜻한다. 창업자가 된다는 건 매우 외로운 일이다. 공동 창업자나 소규모 팀과 10년간 한가지 문제에만 매달리는 삶을 사는 경우도 많다. 기업가정신이 없으면 이런 인고의 시간을 나기가 쉽지 않을 거다.”

–셋 모두 신입생 시절 우연히 ASES에 발을 들이고 2년 만에 창업에 나섰는데, 이곳에서 무엇을 배웠나.

신하 “우리 셋 모두 신입생 땐 뭣 모르고 10개 넘는 동아리에 등록했다. 그중 유일하게 활동 중인 ASES의 멋진 점은 학생들이 서로 배우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창업자가 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체화하게 되는 거다. 이 단체엔 8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적으로 학생들이 책임지고 운영한다. 우리 셋은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같이 일하고 싶은 팀원의 태도는 어떤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배웠다.

우선 신입생은 12주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제 벤처 투자자에게 PT 발표까지 해 피드백을 받는다. 또 전 세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연다. 일론 머스크나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도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오는 봄에도 스탠퍼드에 일주일간 글로벌 학생들을 초청해 스타트업을 개발하고 피칭, 네트워킹 방법을 함께 배울 예정이다. 한국 학생들도 신청할 수 있다.”

테이 “호주에서도 야망이 큰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직업은 의사나 변호사이지만, 난 어릴 때부터 컴퓨터공학을 좋아해 이 기술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ASES는 스탠퍼드에 있는 거의 모든 단과대 학생이 참여하는 몇 안 되는 단체 중 하나다. 이곳에선 학생들의 배경이나 전공이 무엇이든 세상에 가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맥클루어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는 도전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대단한 곳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버블에 갇혀있기도 하다. 많은 기업가와 투자자가 실리콘밸리에 집중돼 있어 이곳에서만 생활하면 밖에 있는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고 눈이 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SES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면 실리콘밸리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훨씬 더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다. 다른 학생들이 연구하는 걸 보면 매일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감탄이 나오고 영감을 받는다. 이곳에선 노력한다면 기회를 얻을 확률은 100%다.”

최근 열린 ASES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ASES 제공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 말고도 또 어떤 측면이 이런 활발한 창업 문화를 만들었다고 보나.

테이 “네트워크가 방대하고 강력하다. 이곳 출신 창업가들은 졸업 후에도 계속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 ASES는 전 세계 30곳 이상의 벤처캐피털(VC)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동문이고,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궁금해한다.”

맥클루어 “여기에 덧붙이자면, 학교와 동아리 모두 물리적인 장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만큼, 창업자와 투자자 등 다양한 자원에 접근할 기회가 많고 위험을 감수하는 시도를 장려한다.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하루 종일 강의실에서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실제로 변화를 일으키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망을 보인다.”

테이 “동의한다. 스탠퍼드에서의 기업가정신은 단순히 스타트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문화로 내제돼 있다. ‘나만의 무언가’는 결국 규칙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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