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아다니아 쉬블리: 팔레스타인에서, 트라우마와 안일한 언어에 관하여 [PADO]

윤경희 문학평론가 2024. 1.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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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의 영문판 표지. /사진제공=New Directions


아다니아 쉬블리(1974~ )는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미디어와 문화학 연구자이다. 영국과 프랑스 텔레비전의 911 테러 및 후속 전쟁 시각화에 관한 논문을 쓰고, 소설 세 권과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하고, 여러 매체에 희곡, 단편소설, 산문을 발표했다. 이 중 『사소한 일』(2017)은 전승희 번역으로 강에서 출판됐다.

팔레스타인인은 1920년부터 1946년까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1948년 이스라엘에 의해 추방과 강제 이주를 당하면서, 이후 영토 대부분을 빼앗겨 전통적 유목 생활을 누리는 대신 거주지 제한을 겪고 있다.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가리키는 아무런 표지가 없고, 아랍과 아랍인이 멸칭이 되고, 이스라엘의 공습경보를 들을 때마다 공포에 말이 막히는 경험을 해오면서, 쉬블리는 이러한 언어의 누락, 삭제, 폄훼, 불능, 침묵을 사유와 글쓰기의 깊은 원천으로 삼는다.

2023년 10월 18~23일 개최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쉬블리에게 리테라투어상이 수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다음, 카르스텐 오테라는 독일 평론가가 쉬블리의 『사소한 일』이 반유대주의적이라 트집을 잡고, 도서전 측은 이스라엘과 전적으로 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팔레스타인 작가를 위한 시상식을 연기했다. 〈뉴욕타임스〉는 도서전 측이 쉬블리와 협의했다고 보도했지만 쉬블리는 소식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수십 년 동안 말이 지워지고 상처를 입는 것을 겪으면서 쉬블리가 지속적으로 사유한 "들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학적 이율배반의 주제를 다시금 방증한다.

아랍 번역 문학을 소개하는 매체 〈아랍리트(Arablit)〉에서는 2023년 10월 16일 팔레스타인의 문학적 목소리를 위한 공간을 폐쇄하고, 아다니아 쉬블리가 도서전의 결정을 미리 상의했다며 잘못된 주장을 펴고, 독일 언론이 쉬블리의 소설을 공격하는 것에 대응해 이에 항의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서한에는 번역, 편집, 출판, 언론, 문학 행사 조직, 창작에 관여하는 주체 1600여 명이 서명했다. 독자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저항과 연대는 독서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전승희 옮김, 강)을 같이 읽기를 청한다.


말들은 자기 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트라우마와 안일한 언어에 관하여 팔레스타인에서 전하는 글쓰기

미레이유 주차우
2020년 9월 17일, BOMB Magazine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2017) 전반부에서 이스라엘 국방군 장교와 그의 부대원들이 네게브 사막에서 베두인 소녀 한 명을 생포해 유린한다. 1949년의 일이었다. 작가는 냉정한 전지적 시점과 과학 수사 같은 디테일을 통해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몸의 통증에도 무감한 집요한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반에 이르러 소설은 현시점에서 당시의 범죄를 조사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동요하는 마음으로 비약한다. 쉬블리의 엄정한 언어와 형식적 혁신은 마치 텍스트 여러 겹을 덧쓴 양피지 같은 효과를 창출한다. 과거가 현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방사선을 쬐는 듯, 실제는 부지불식간에 상상의 표면 위를 감돈다.

쉬블리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팔레스타인과 독일을 오가며 생활한다. 나는 그를 베를린 문학의 집에서 잠시 마주친 적이 있다. 1년 후 그의 세 번째 소설 『사소한 일』을 읽을 때,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아마추어 탐정의 이야기에 나는 온몸이 관통당하는 것 같았다. 소설의 배경은 과거와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가르는 불안정한 경계선 위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두 집단을 오가며, 그 사이의 교란된 땅, 박해, 불의에 주의를 집중하고 점령 치하 삶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소설은 초연한 거리 감각을 유지한다.

우리는 쉬블리와 그의 아들이 팬데믹 격리에서 풀려난 직후 이메일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은 여름이었고 이들은 감염자 수가 치솟기 전에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여정은 그리스 코르푸 섬에서 일단락된 상태였다. 쉬블리는 그리스와 독일에서, 그리고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미레이유 주차우(이하 MJ): 선생님은 『사소한 일』의 집필에 12년을 들이셨지요. 언어와 형식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고요. 과거 이스라엘 장교의 이야기와 현재 팔레스타인 여성의 말로 이분화된, 소설의 형식 및 시점의 대비를 처음부터 명확하게 염두에 두셨나요?

아다니아 쉬블리(이하 AS): 안일한 언어는 어떻게 고통을 초래하는가, 다른 한편 안일한 언어로 어떻게 고통을 회피하는가, 이 문제를 사색하던 중에 소설을 발상하게 됐습니다. 다른 것 없이 오로지 이 두 가지 단초에서 출발했어요. 그런 다음 언어가 찾아왔지요, 12년 동안, 한 단어 한 단어씩이요. 형식과 내용은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말들을 장악하려는 대신 그저 매일 아침 그것들이 느릿느릿 나타나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말들은 때로 파리 같은데, 제가 살짝이나마 움직여서 놀래키면 날아가 버릴 테니까요. 소설의 각 부분마다 저에게 그것을 써나가는 절차를 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통제해 보기도 했지만 효과가 형편없어서 그런 부분은 결국 삭제해야 했어요. 설명하기 곤란한데 그래도 매혹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조리 있게 말할 수 없군요. 텍스트의 필자로서 그렇게 변변찮은 활약을 했다는 것을요. 때로 무섭기도 해요. 과정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다면 일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진행될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동안 우연 중대한 역할을 맡아 저보다 더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MJ: 선생님은 여러 언어에 능통하지만 글은 아랍어로만 쓰시지요. 이 소설의 영어본을 위해서는 번역자 엘리자베스 자케트와 협업하셨어요. 언어가 작품의 출발점이었다고 하니, 두 분이 언어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누셨을지 궁금합니다.

AS: 저는 아랍어, 영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한국어, 그리고 독일어를 압니다. 그중 몇몇 언어는 상대적으로 더 잘하고요. 어떤 언어는 다른 언어 때문에 더 서툴게 되거나 아니면 더 유창해지기도 해요. 소설은 아랍어로만 쓰는데, 왜냐하면 이 언어는 마녀 같기 때문이에요. 놀랍고, 웃기고, 미쳤고, 마음씨 좋고, 잘못에 관대한 마녀요. 아랍어는 저에게 무엇이든 허용합니다. 아랍어는 제 삶에서 경험한 가장 친밀한 자유의 공간이랍니다.

번역 과정은 지난하지만 보람 있었습니다. 번역자에게 『사소한 일』의 텍스트는 마치 과적된 짐 같았을 텐데요, 소설의 언어를 형식적으로 결정하고 조직하는 데 특수한 경험이 개입되었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식민화와 압제에 의해 언어가 훼손된 방식들이라 할까요. 이러한 언어적 경험을 아랍어로 쓰려면 공간적 여유와 엄밀성이 요구됩니다. 쓴 것과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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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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