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약속한 '금투세 폐지' '상속세 개편', 왜 경방에 안 담겼나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상속세 개편 등 주요 세제 관련 내용을 담지 않았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과물을 내야 하는 정부로선 '여소야대' 국면을 고려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다만 앞서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와 금투세 폐지 방침이 대통령실 주도 아래 이뤄진 만큼 증권거래세 개편 등 추가 조세제도 개편 추진이 총선 전 발표될 수 있단 전망이 제기된다. 반대로 상속세 개편 등은 총선 결과에 따라 추진 동력이 생길 수 있단 관측이다.
7일 정부에 따르면 올해 경제정책방향에는 최근 이슈가 되는 금투세 폐지 계획이 안 담겼다. 정부가 얼마 전 추진을 공식화 한 사안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인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윤 대통령 발언 직후 있었던 경제정책방향 사전브리핑에서 이 내용을 공식화했다. 김병환 기재부 1차관은 대통령실과 사전협의가 있었다며 "대통령 공약으로 일관되게 추진돼온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경제정책방향에는 이 내용이 없었다. 금투세 폐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증권거래세·양도소득세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개편 방향도 담지 못했다. 김 차관은 "거래세·양도세 개편은 검토와 점검이 필요한 주제"라며 "세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어떤 조합이 바람직한지 짚어보겠다"고 했다.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굵직한 세제 개편안을 뺀 건 '여소야대' 지형에 변화가 없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2022년 금투세 시행을 2년 늦추는 조건으로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으로 묶고 증권거래세를 단계적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대통령실 주도 아래 대주주 양도세 기준을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전격 입법예고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실발(發)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 방침에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새해 들어선 금투세 도입을 아예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했던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와 달리 금투세 폐지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야당은 금투세 폐지에 반대하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차관은 금투세 폐지 추진이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담기지 않은 데 대해 "대통령의 행보나 메시지와 관련된 정책의 경우에는 특수성을 감안해 다룰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를 두고 경제정책을 주도해야 할 기재부가 대통령실에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실 주도 아래 이뤄진 최근 주식 관련 세제개편 논의들이 대체로 주식투자자들 '표심'에 우호적인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올해 경제정책방향 발표와 관련해 "이번 발표에서 논란을 피하려고 상속세 체계 개편, 금투세 폐지 등은 언급하지도 않았다"며 "검토하지 않은 내용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냐"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주요 정책을 대통령실이 발표하고 정부가 수습하는 모습이 총선 전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공매도 금지→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금투세 폐지' 순으로 소액주주 친화 행보를 보인 대통령실이 다음 차례로 증권거래세를 손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거래세는 양도차익이 아니라 양도가액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더라도 세금을 내야 해 불만이 컸다.
세수를 생각하면 금투세 폐지 방침에 따라 단계적 인하가 진행 중인 증권거래세는 올려야 하는 게 맞지만 이런 결정은 사실상 어렵다. 이미 두차례나 세율이 낮아진 상황을 체감한 투자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서다. 오히려 총선이 임박할 수록 정치권에서 '거래세 백지화' 주장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윤 대통령이 공약한 상속세 개편은 차일피일 미뤄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계획했던 상속세 개편(유산세→유산취득세)을 "너무 큰 작업"이라며 나중으로 미루더니 올해 경제정책방향에도 담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대기업·부자 감세'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상속세 개편은 증권세제와 달리 '부의 대물림' 비판 가능성이 큰 만큼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해야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다. 반대로 여당이 총선에서 패할 경우 상속세 개편은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상속세 개편은 사회 각계각층과 긴밀히 소통해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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